죽부인

한 여름밤의 꿈

by 한천군작가

1.

더위

어쩔 수 없이

사람이기에

존재가 미워진다


2.

애정도 없이

그늘도 없이

무식한 놈

모든 마음을 말소시키는

그놈이 새삼 무섭다


3.

넓은 대청마루

간간히 부는 바람

살랑거리는 추임새에

코끝으로 느끼는 바람으로

죽부인을 안고 잠든다


4.

황죽 얇게 쪼개어

숯불에 지져가며

긴 산고 끝에

마름모 구녕이 숭숭

얼금얼금 엮어

성글게 엮어 짠

그 속으로 자연이 숨 쉬고

그 차가움에

등까지 시원하구나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베개로 여름에 시원하게 하기 위한 기능적인 면이 있는 베개.
중국은 물론 일본과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얇게 쪼갠 대나무를 엮은 것으로 세우면 보통 성인 남자의 명치나 가슴 정도 높이이며 옆으로 누워서 잘 때 다리나 팔이 겹치는 걸 막고 바람이 통하게 만들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이 사용하던 것은 죽(竹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사용하던 죽부인은 옷가지와 함께 태웠다고 한다.

9a9f0b6bdd44c30b9c078554c08d1aba.png 남한산성의 건강한 밥상에서 본 죽부인 조명.

여름 필수품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나이 먹기 전에는-저건 할아버지들이 품고 주무시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이제야 내가 나이 먹으니 저게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몇 해 전 여행 중에 죽부인을 보고 얼마나 반갑고 신기했는지 "저거 안고 자면 시원해요?"라는 내 물음에 빙그레 웃으시던 아주머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마누라가 더 시원합니더" 라고 말을 하셔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분명 저 아주머니는 혼자 사실 것이다. 사람 체온이 얼마나 더운 것인지 모르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친 적이 있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시 죽부인을 보고 "저거 빌려 주시나요?"라는 말에 "가져가서 숙면하세요." 라며 미소 지으시기에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안고 잤는데 선풍기 바람이 솔솔 "이야 이거 물건인데. 왜 난 이제야 이걸 알았지."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뽀송함에 역시 선조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한 적이 있다. 그래서 꼭 하나 사야지 했는데 도대체 그 집을 찾을 수 없어 그냥 온 아쉬움에 쓴 글이다. 불로 지진 무늬가 너무 멋스러운 죽부인의 매끄러움과 시원함에 나는 반했다.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자태에
감미로운 휴식

손만 내밀면
말없이 안겨오는
상쾌함

세월이 흘러도
투정이 없는 순응은
변함이 없구나.

문재학 님의 죽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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