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남(嶠南)에 흐르는 강이
어디 밀양강 너 뿐이랴마는
낙동도 널 부러워하고
남강도 널 부러워 함에는
영남 제일이라 그러하지.
충량과 퇴량은 모두 용신이니
뉘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흐르는 물결 닮은 침류각
익루와 본루는 세월의 흐름인가
유월 뙤약볕도
흐르는 한 줄기 땀방울도 식혀주는구나.
걸어 걸어서 나를 따르는 강물
누워 누워서 바람과 마주하는 교남명루야
너는 여전히 세월이요
나는 여전히 너를 닮아 나이 듬이니
세월도 멈춰 강을 바라보는구나.
영남루의 현판 글.
江左雄府(강좌 웅부) : 낙동강 왼쪽에 아름다운 큰 고을이란 뜻으로 귤산 이유원의 글씨다.
嶺南樓(영남루) : 송하 조윤형이 쓴 현판과 이인재 부사의 둘째 아들 이현석이 7살에 쓴 현판이 있다.
嶠南名樓(교 남명 루):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난 누각이란 뜻으로 귤산 이유원의 글씨다.
嶺南第一樓(영남 제일루):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 이증석이 11살에 썼다는 현판이 눈에 띈다.
江城如畵(강성 여화): 강과 밀양읍성이 어우러져 그림과 같다는 뜻
영남루는 낮은 계단을 올라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달리 영남 제일루 일까 한다. 옛 선인들은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를 포함해서 한국의 3대 누각으로 꼽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아름다움에 구름도 잠시 처마 끝에 앉았다 가는 듯하고 바람도 익루를 붇잡고 가기 싫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영남루와 촉석루를 다녀오고 나면 하나의 소원이 생긴다. 통일이 되면 부벽루를 꼭 보고 말 것이라는 아주 소박한 소원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들은 하나같이 다 아름다움에 정신이 혼미해 옴을 느낀다.
영남루는 넓은 마당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으로 능파각이 그 늠름함을 과시하고 있다. 또 조금만 산책 하 듯이 걷다 보면 한국 가요계의 큰 별이셨던 고 박시춘 선생의 생가를 만날 수 있고 또 그 아래로 짧은 그늘 길을 걸어 내려가면 아랑각이 밀양강을 보고 앉아 있다. 특히 아랑각은 대나무밭 아래에 있어 그런지 그 사스 락 거리는 소리가 마치 정절을 지킨 아랑의 울음처럼 들리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영남루는 동서 5간 남북 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다. 동서 좌우에는 다시 각각 3간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적에 영남사의 절터인데 고려 공민왕 14년(AD 1365년)에 밀양부사 김주가 개창하여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