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냐
그렇다면 저기 부딪쳐 사라지는
파도를 보지는 말아라.
산산이 부서져 마음까지 다칠까 두려우니
멀리 푸른 너울만 바라보아라.
산을 보는 것이더냐
그렇다면 산 아래 나부끼는
나무들의 몸부림을 보지 말아라.
흔들림에 너 또한 흔들릴까 무서우니
운무를 품은 포근함만 보아라.
일출은 너에게 소리치지 않는다
월출은 너를 흔들지 않는다.
서로 다른 붉음으로
너의 길고 곧은 자리까지 물들이니
너도 그렇게 세월을 물들이려무나.
예부터 청간정은 그 경치가 아름다워 시와 그림으로 알려진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설악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청간천이 이곳에 다다르고 만경 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자리 잡은 팔각지붕에 중층으로 이루어진 누정이다. 관동팔경 중 수일경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아마도 일, 월출의 장험함에도 묻히지 않고 부서지고 뭉글뭉글 뭉쳐지는 파도가 너무도 황홀하여 그리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영랑의 무리가 남석으로 갔다)’은 붉은 글씨는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이곳을 유람한 사선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을 머무른 후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는가? 선유담, 영랑호 거기에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 등 몇 군데에 앉아서 놀았던가?”
- 송강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관동별곡에서도 극찬을 하였던 이곳은 마치 파도소리를 듣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청에 가만에 누워 그 바닥으로 울리는 바다소리를 듣고 있으면 바닥에서 베어 나오는 파도 소리가 꿈길이 이런 것일까 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곤 한다.
그리고 청간정을 에워싼 송림 사이로 한 줄 두줄 햇살이 투영되고 그 햇살에 춤을 추는 파도와 해조들의 한가로운 비행이 잠시 자리를 잡고 앉게 만들며 고개 돌려 보는 장판 같은 평지는 배부른 풍요로움을 주는 듯하여 좋다.
굵게 멋 부리지 않은 "淸澗亭"이라는 글씨는 청파 김형윤 선생의 친필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로 되어있었다는 문헌으로 전해지는 현판은 고종 21년에 전소되어 1928년에 재건되었기에 당시 독립운동가이며 서예가였던 김형윤 선생의 친필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니 가슴이 아파옴을 느낀다. 내 것을 내가 지키지 못한 설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저 굵은 글씨가 마치 동해바다의 늠름함과 같아 보이니 그 마음이 해갈되는 듯하다.
天敎滄海無潮汐 (천교 창해 무조석) 하늘의 뜻이런가 밀물 썰물 없는 바다
亭似方舟在渚涯 (정사 방 주재 저애) 방주처럼 정자 하나 모래톱에 멈춰 섰네
紅旭欲昇先射牗 (홍욱 욕 승선 사유) 아침 해 솟기 전에 붉은 노을 창을 쏘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 재동기 취의) 푸른 바다 일렁이자 옷자락 벌써 나부끼네
童男樓艓遭風引 (동남누접조풍인) 동남동녀 실은 배 순풍을 탄다 해도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 도착 자지) 왕모의 선도(仙桃) 열매 언제야 따먹으리
怊悵仙蹤不可接 (초장 선종 불가 접) 선인의 자취 못 만나는 아쉬움 속에
倚闌空望白鷗飛 (의란 공망 백 구비) 난간에 기대 부질없이 오가는 백구만 바라보네
-《택당 집(澤堂集)》5권에서.
그 아름다움에 많은 문인들이 감탄을 하고 그림으로 글로 남겨 주었으니 당시 그 아름다움은 지금의 열 배 백배 아름답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최규하 대통령의 '악해상조고루상(嶽海相調古樓上) 과시관동수일경(果是關東秀逸景)' 시판에 게판 되어 있다.(설악과 동해가 마주하는 고루(古樓)에 오르니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경치로구나!)
특히 애정을 가진 분이라고 한다. 누구의 시선으로 보아도 이 절경은 너무도 아름다우니 이제는 잘 간직하여 내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들도 이 절경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소망으로만이 아니라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지켜야 할 것이다.
일찍이 청간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가사문학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송강 정철은 45세 되던 해인 1580년(선조 13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관동별곡(關東八景)》에서 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간성(고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울진)의 월송정 등 여덟 곳을 관동의 팔경으로 꼽았다. 북녘땅에 있는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을 제외한다면 청간정은 남한 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관동팔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