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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Jul 02. 2016

冬譚哀(동담애)

슬픈 겨울 이야기(하늘만큼 땅만큼 중에서)

쇠잔한 달은 홀로 남아서

흐릿한 꽃을 보는데

저녁 빛은 숲으로 걸어가

밤을 만나는데

벗이 되어버린 달은

흐릿한 빛으로 늙어간다.

남아있는 시간의 간절함

마치 연기  파도처럼

시름시름 앓아가는 바위처럼

밤이슬은 눈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

타향의 객이 되어버린

고목처럼 딱딱해져 버린

살고 싶은 인영이여

그대 그리움의 끝은 

봄이 오지 않았구나.





그해 겨울은 참 추웠구나. 하긴 겨울이 추운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함이 더욱 진한 이유는 홀로 타국에서 지낸다는 외로움보다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아픔이었다.

14시간의 긴 비행 그리고 휠체어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그 자리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그렇게 꼼짝없이 다음 비행기를 기다렸던 피어슨 국제공항,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두어 시간의 비행을 하고 병원에서 마중을 나온 킴과 인사를 나누고 - 사실 눈인사였지만 - 엠블란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그 날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본 것 같다. 두툼한 담요를 덮어주며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던 킴. 휠체어에 앉은 그 사람도 미소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흘렀고 넓은 창 앞에 시들어 말라버린 꽃처럼 힘 없이 휠체어와 한 몸이 되어 버린 그 사람에게 오타와는 겨울왕국이었다. 그 사람 지겹도록 하얀 세상만 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시력저하가 생길 수 있으니 그만 들어가라며 휠체어를 밀어주는 킴.

그 사람 거울 보며 혼잣말을 한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덤성덤성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민머리가 되어버린 그 사람은 다시 혼잣말을 한다.

"넌 두상이 이쁘니까 그나마 볼만하다. 괜찮은데. 마치 율 브리너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아"

혼자서 자신을 위로하는 그 사람의 눈에는 분명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고개 숙여버린 그 사람 어쩌면 속으로 눈물까지도 삼켜 버렸는지도 모른다.


Kingsmere Lake.


호수라고는 하지만 물은 없었다. 수면을 모두 얼려버린 차디찬 기온 덕에 모든 것이 얼어버리고 그 곁을 지키는 나무들만이 하얀 옷을 입고 추위에 떨고 있을 뿐이었다. 호수 역시 하얀 눈으로 덮여서 어디가 경계인지를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이 하얀색이었다. 그 사람 저 하얀 풍경을 보며 모든 것이 저렇게 하얗다면 하며 매일 늘어가는 혼잣말을 한다.

"내 속에 자라는 것도 저렇게 하얀 세상을 보고 있을까? 그것이 사라지면 내 영혼도 저렇게 하얀색이 될까?"

조금만 노력하면 곧 걸어서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희망이 생겼고 그 희망이 현실이 되어 저기 저 하얀 호수를 보고 있을 수 있는 것이 꿈같았다.


연일 계속되는 토악질은 내 가슴속까지 토해내려는지 너무도 힘들게 괴롭힌다. 이럴 때면 누군가 너무도 그립다. 하지만 현실은 혼자라는 단어를 선택하 듯이 그녀를 모질게도 이별하게 만들었고 홀로 타국에서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에 대한 감사를 하며 힘겨운 싸움을 하게 만든 현실은 너무도 혹독하다.


그 사람의 일기장 속에 담긴 아픔 덩어리다.

매일 아침이면 감사의 기도를 하게 만들었던 많은 날들을 어떻게 홀로 참아왔는지 대견스럽기도 하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링거를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는 늘 곱씹었던 말이 "어쩌면" 이었다. 하지만 싱그러운 겨울 아침이 그 사람을 반겨 주었고 그 사람은 향기로운 아침을 만나며 감사해하였다.

그리고 봄이 올까? 여름은....


이야기 수필집 하늘만큼 땅만큼 중에서.


아직 보여주지 못한  수필집 속의 내용을 빌려왔다. 

그해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힘겨운 투병은 계속되었고 소원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하였을 무렵 그 첫 번째 소원이었던 산책을 하였던 그 날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원이었던 자전거 타기를 한 그 날 역시 그럴 것이다. 스미스 로드를 달려 리도강까지의 먼 거리를 천천히 바람을 맞으며 가던 그 길은 마치 첨밀밀에서 홍콩 시내를 자전거로 두리번거리던 극 중 "소군"처럼 그렇게 자전거를 탔던 그날... 어쩌면 등려군의 음악도 흘렀는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으로...

어쩌면 이요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으로 미소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소원들이 하나씩 이루어질 무렵 영화처럼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그 사람 때문에 마지막 치료를 끝으로 산소 호흡기까지 사용해 가며 긴 비행을 하며 내 나라로 날아온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걱정할 정도는 아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은 된다. 그 겨울...  다시 살아보라고 준 여분의 시간에 충실하며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만 한 이 즈음 나는 그 겨울이 그립다. "하늘만큼 땅만큼 은하수 저 멀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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