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둘러버린
풀잎에 앉은 여름
강물에 흐르는 구름은
조각조각 흘러가 버리고
고개 돌리니
남실바람만 거기 섰다.
안개가 가려버린 아침
꽃들의 떠드는 소리
흐렁흐렁 바람 살에
비는 세로로 선을 긋고
잠시 나온 하늘 층층이 에
노을이 들었다.
여름이면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난다. 올해는 비가 얼마나 올까? 큰 비가 오지는 않겠지. 하는 걱정들이 일기예보를 보게 만든다. 농부도 아니면서 무슨 비 걱정이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는 가끔 내리면 단비요 굵게 내리면 지나는 소낙비요, 길게 내리면 장마라 너무 길게 내리면 농부가 아닌 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또 다른 뜻이 있을까 고민해 보니 속물 같은 마음이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저 비가 그치면 채소값이 뛰겠지 하는... 하지만 장마에만 느낄 수 있는 비릿한 내음이 도로가를 걷고 그 냄새가 좋아 창을 열어두기도 한다. 물론 금방 후회를 하지만...
오늘은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겠다. 집 입구에 있는 큰 나무가 넘어지진 않았을까? 소일거리 삼아 심어 둔 토마토, 고추, 노각, 상추며 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비를 맞으며 이리 손 보고 저리 손 보실 것을 생각하니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장마가 오면 집을 자주 들리게 된다. 저 어린것들을 보살피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비옷도 챙기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카스텔라를 사고 아버지 좋아하시는 커피를 사서는 웃으며 집을 찾는다. 그리고는 처음 마음과는 달리 그 일을 하지도 못하고 그냥 올 때가 더 많다. 비 오는데 뭘 한다고 그러냐시며 못하게 하신다. 분명 내가 가고 나면 하실 것을 알지만 오랜만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빗속으로 내 보내기 싫으신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고집을 부릴 수도 없다. 그러시면서 빗속을 지나 방울토마토가 잘 익었다시며 따다 주신다. 그저 웃을 뿐이다. 내게 장마는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난 아직도 소년이다. 부모님 앞에서 만큼은... 그래서 좋다.
난 아직도 소년이니까...
비 오면 뛰어 나가 비를 맞고 돌아다니길 좋아했던 그 소년이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내 부모님 눈에는 아직도 소년이다. 그래서 나는 긴 장마가 좋다.
"뭔 일이냐?"라고 하시면 "비 오잖아" 하며 거실로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