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尺牘(척독) -2- 벗에게

척독은 짧은 편지글을 뜻함.

by 한천군작가

베겟가에 놓아둔 꽃

소매자락 시리도록

네 모습 시리기만 하여

창가에 남은 햇발을 덮으려니

달빛이 내려앉았다.


쇠잔한 봄에게 부치니

시절이 데려간 매화도

걸음 멈추고 돌아보는 동백도

늙어지는 좋은 날에게

머물러 있어 좋은 시절이라 한다.


많은 벗이 있어 좋다. 이 공간에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도 벗이 되기에 좋다.

글 하나에 웃고 글 하나에 슬픔을 나누고 글 하나에 그의 마음을 토닥여주니 좋다.

글벗에게 글을 선물하니 마음속에 또 다른 꽃이 피어 그 꽃으로 향기롭기에 너무도 좋다.

계절이 바뀌는데 글 벗님들은 어찌 지내시는지 모든 분들께 한분 한분 글을 드려야 하지만 이번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차후 모든 분들께 짧은 편지글 하나씩 드릴 것이니 오늘은 이렇게 모두 봐주시길 바랍니다.

해가 참 많이 짧아졌습니다. 당연히 밤이 길어졌지요. 길어지는 밤에 글을 보고 혼자 향기로워합니다.

그러다 님들께 계절이 바뀌는데 어찌들 지내시는지 안부 여쭙니다.

그리고 좋은시 한수도 곁들여서...


一溪澄淨四山深(일계징정사산심)

白日翛然世外心(백일소연세외심)

京國故人安穩未(경국고인안온미)

因風莫惜報徽音(인풍막석보휘음)


한줄기 시내는 맑고 사방 산은 깊으니

세상 밖의 마음이라 한낮에도 그윽하구나.

서울이라 벗님네 편안히 지내시는가

인편을 만나거든 소식이나 전해주오


도은 이승인이 권근에게 보낸 시.


도은 이승인은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삼은이라 불렸던 고려말 문인이다.

그리고 권근은 조선의 건국 공신으로 조선 초기 문물제도 정비에 앞장선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운명이 갈라지기 전까지 그들이 보여준 우정에 대한 시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벗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시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시에 대한 답으로 권근이 또 한 편의 시를 지어서 보냈는데 그 시 역시 소개를 하자.


門外黃塵萬丈深(문외황진만장심)

春生京國獨傷心(춘생경국독상심)

知君白日翛然味(지군백일소연미)

莫向人間玉爾音(막향인간옥이음)


문밖에 누런 먼지 깊이가 만 길이라

서울에 봄이오니 나 홀로 마음 상하네

알겠구나, 그대의 한낮 그윽한 맛,

이곳 속세를 향해서 이야길 말아주오.


권근이 이승인에게 쓴 시 (권근의 양촌집에서)


관직에 나가 있는 사람과 관직을 버린 사람. 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간다 하여도 두 사람의 우정이 변치 않음을 글에서 볼 수 있다.

나도 소망한다.

내 글벗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렇게 소망한다.

세상 어디에서 살고 있더라도 나는 그들과 함께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옛 선비들의 그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서로 마주할 수 있다면 더 없는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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