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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緣(인연) 3

by 한천군작가

때가 있다 합니다.

시간에게도 묻지 마시길

만날 사람은 만나니

준비만 하라고

한 번의 마주침이

내 인연이 아니라 하여도

흐름 속에 살고 있음에 감사를 합니다.

성숙하지 못한 세월이기에

조급해하지 말자고 합니다.

속으로 감추려는 나를

곱게 단장시켜서

첫 눈 맞춤을 준비하라십니다.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인연의 끈을 잡고 살아가는지 우리는 모르고 산다. 단지 내 반쪽에 대한 인연만이 그것이라 여기며 슬퍼하며 익어가는가 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연이란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도 분명 인연이라 할 것이다. 매일 아침 수 없이 많은 안녕하세요를, 고개 숙임을 반복하는 것 이것 역시 인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런 인연을 사랑한다. 보도블록 틈에서 곱게 핀 풀꽃에게도, 만나면 반가운 모든 얼굴들에게도, 어제 본 길 고양이가 나를 바라봐 준다면 그것 역시 인연이라...

그리고 댓님들 역시 내게는 하염없는 사랑을 주시는 인연이라 여긴다.

너와 내가 떠도는 마음이었을 때
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떠돌았던
시절의 넓은 바람과 하늘 못 잊어
너 먼저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너 아닌 곳을 오래 헤매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가없이 그렇게 흐르다
옛적 만나던 자리에 돌아오니
가을 햇볕 속에 고요히 파인 발자국
누군가 꽃 들고 기다리다가 문드러진 흔적
한 내 걸어오던 길 쪽을 향해 버려져 있었다.

도종환 님의 인연

아플 때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참 오랜만에 가져 봤다. 얼마만인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 몸으로 쉼을 느껴본 것 역시 얼마만인지 모른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니 누군가의 손이 다가와 덥석 전화기를 가로채 갔다.

"이건 안돼요! 괜찮아지면 드릴게요"

"...."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초롱초롱한 간호사의 눈만 바라본다.

"그러게 이렇게 기온이 차이가 많을 때는 가만히 계시라는데 왜 그렇게 돌아다녔어요?"

"바람이 간지러우니까"

"간지러워요?"

"응 아주 많이"

"그게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게 있어. 날 가만두지 않는 그 간지러움"

그러며 돌아 누웠다.

그리고 오늘 전화기를 켜고는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춘 듯이 아니 뭔가에 둔탁하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안부를 묻는 벗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내게는 늘 곁에 벗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이 공간이 너무도 좋다. 좋아하는 글들이 무수히 많아서, 벗들의 글이 많아서, 그리고 그 글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수억 만권의 책을 여기에 모아둔 것 같아서 나는 좋다. 그래서 글을 쓴다. 그 속에서 벗들과 놀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벗들과 이 하얀 종이 위에서 검은 잉크로 놀고 싶다.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우리는 정녕코 執友(집우)가 아닐까.


執友(집우)는 두보(杜甫)의 시에 나온 말로 뜻을 같이하는 벗이라는 뜻이다.
執 - 잡을 집
友 - 벗 우
두보(杜甫)의 곡왕팽주륜(哭王彭州掄)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執友驚淪沒(집우경륜몰)
斯人已寂寥(사인이적료)
新文生沈謝(신문생침사)
異骨降松喬(이골강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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