可以東 可以西(가이동 가이서)... 가을걷이
밝은 미소 暗香(암향)이고
고개 숙여 풍성한 들판
마음은 도도록하다.
하늘은 춤을 추고
가을비 飛瀑(비폭)이 되어 널브러지면
풍요로운 마음 모아
비를 피해 賓室(빈실)에 모셔두어
햇살 펼쳐질 때
모셔둔 가을을 꺼내어
절구질에 절굿공이 닳아지고
가을은 절그렁거리고 있다.
* 可以東 可以西(가이동 가이서).....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나 할만함을 말함..
* 暗香(암향) -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
* 도도록하다 - 가운데가 솟아 소복한 것
* 飛瀑(비폭) -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
* 賓室(빈실) - 객실과 같은 말
* 절굿공이 - 절구질에 쓰는 나무, 쇠, 돌 따위로 만든 공이
바람이 차가웁다고 느끼며 걷던 길을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반짝이는 네온들이 오늘은 처량하기만 하다.
지나는 차들도 빗길이라 잠시 잠시 멈칫거리는 것이 마치 여름이 가기 싫어 멈칫거리는 모습을 닮았고, 나 역시 그 여름을 잡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가 보다.
이런 종류의 이별을 네 번을 거치면 처음 이별이 다시 꽃이 되어 찾아오는데 매번 이런 이별에도 익숙하지가 않다.
순간순간 스치는 바람에게 말하고 싶다.
"너는 또 언제 나를 만지며 구름을 옮겨버릴 것이냐"
가을은 이렇게 조용하게 나를 건드린다.
아직은 짙은 노을이 좋고, 덜 익은 벼가 덜 무거워하는 것이 좋다. 딱 이만큼이 좋은데 너는 이대로 또 가 버릴 것이 아닌지, 내리는 가을비처럼 흐르고 말 것인지...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고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김용택 님의 가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