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여름이 아쉽고 오는 가을이 반갑다.
구름은 길의 끝이었다.
먼 강은 고향이었는가
소매 적시는 것이 눈물 아니어도
여름은 초록의 시내가 되어
바람 등 떠밀어 꽃 띄웠다.
버들은 긴 머리 날리듯이
실타래 같은 바람을 잡았는데
흘러가버린 시간까지도
내 눈물이 아니라 하기에
구름은 길 끝에 서 있다.
처서가 지난 지 며칠이 지났고 간간히 소나기 지나가 그 자리 열기를 식혀주고 밤이면 강바람에 바닷바람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니 이제 가을이 오려나보다.
가을이면 뭘 할까? 긴 잠에서 깨어나 목청껏 울었던 매미소리 줄어들고 풀벌레 목을 가다듬으니 그 곁으로 살짝 가서 앉을까. 시원한 바람에 등을 눕히고 구름을 덮고 낮잠을 잘까, 그러다 고운 길 걸어가 목이 길어 슬픈 꽃을 만날까 작아서 허리 굽히지 않으면 안 되는 앉은뱅이 꽃을 만날까?
행여 낙엽이 지면 그 꽃을 덮어 버릴까 비질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을 먼저 하게 만드는 것이 가을이라니...
가을은 바이올린을 닮았다. 현을 스치는 그 아련함이 바람이며 당겨서 나오는 소리는 떨어지는 낙엽의 소리로 들리는 듯하여 나에게 가을은 바이올린 같은 것이다.
마치 바이올린이 울어버리면 나이 든 갈대가 흐느끼듯 흔들리고 비에니아프스키 "침묵의 로맨스"를 닮은 가을은 그저 침묵하며 다가올 겨울을 위해 짧은 그림을 그리다 가 버린다. 우리는 그 짧은 그림 위에서 음악 같은 시간을 만나고 그 시간으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바이올린을 닮은 가을을 어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