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피는 해지개
언덕이 노을인데
연꽃 피어
안개 먹은 웅덩이
방죽을 따라 가는데
묶인 매듭이야
천상을 이어주고
아득한 허공에
毘盧(비로)의 수틀에 놓인
짧은 이야기로구나
毘盧(비로)는 산스크리트 어로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으로, 동아시아, 네팔, 티베트 등지의 대승 불교권에서 널리 숭배되는 최고의 부처.
참 많이도 무뎌졌다. 사물을 보는 것도 그것을 느끼는 것도 모두 예전 같은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무뎌진 반면에 참 많이도 너그러워졌다. 사물을 보는 마음도 그것을 느끼는 마음도 예전보다는 많이도 너그러워졌다. 아마도 시간이 주는 평온함이 아닐까. 혹은 내게 주어진 늙은 시간이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의 늙어가는 시간은 예전보다 천천히라는 말을 하며 나 보다 뒤에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나이 탓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연도 매 한 가지 인 듯하다.
젊은 날의 인연은 스쳐지날 뿐인데 그것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잡으려 노력을 하였고, 서른 즈음에는 이것이 내 인연인가 하고 끌려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마흔 즈음에는 인연은 그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한 순간 인연이야 라는 생각을 하였던 부질없는 그 시절이 어쩌면 그리운지도 모른다.
마흔이 되고 또 예닐곱의 나이를 더 먹고 보니 인연은 결코 잡으려 든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며 스치고 지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것은 결코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깊은 마음속에서 오는 아주 작은 신호를 알아차릴 때 비로소 진정한 인연이라는 것을 왜 그 시기에는 몰랐을까.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