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버리고...
같은 하늘 아래 -24-
소진(消盡)되어 버린 하늘 아래에
흑백 화면처럼 낡아버린 시절이
고통으로 눈뜨게 만드는데
나의 하늘은 둔감하게 느껴지고
순간순간 돌아오는 구름은
고착(固着)되어버리는 내 모습에
고통스러운 이별에 눈이 아려옵니다.
거꾸로 뒤집어 놓은 일기장처럼
거꾸로 꽂아 놓은 읽지 않는 책처럼...
Si tu te vas
El dolor me comera
Un dia mas
No podre vivir sin ti
네가 떠나면
아픔이 나를 삼키겠지
하루도 너 없이 살 수 없을 거야.
Jose Luis Perales 의 Y Tu Te Vas 중에서.
Yves Montand의 Autumn Leaves를 들으며 낙엽을 밟았던 시절에는 그 시절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몰랐다.
비록 귓가에는 샹송이 흐르고 있지만 눈 앞에 아니 곁에는 늘 함께 걷는 사람 하나 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시절을 눈에 담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순간을 즐기기에 급급하여 정작 아름다운 시절을 잃고 있었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것을 알아버린다.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가을이면 낡은 턴테이블에 지글거리며 돌아가는 LP가 토해내는 샹송을 받아먹는다.
아련한 추억이 함께 지글거리기에 스르르 눈이 감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어느덧 싱그러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 Enrico Macias의 Le Fusil Rouille를 듣기 위해 젖은 수건으로 Lp판을 닦고 있다. 그 시절 나는 Helene Rolles를 좋아했고 Michel Polnareff의 Holidays를 흥얼거리며 낙엽을 하나 둘 주워 책장 사이에 넣어두곤 하였다. 그리고 가을이 싫어지기 시작한 적도 있었다. 그해 가을 강원도 철원에는 너무 일찍 가을이 찾아와 버렸다. 9월부터 하나 둘 낙엽이 지기 시작하였으니 싸리비를 들고 낙엽을 쓸기 시작하는 그때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처럼 고정되어버린 시선이 매일 아침 남쪽을 향하고 있었으니 가을이 그다지 반가울 리 없었다. 정훈실에서 혼자 듣는 샹송은 슬픈 계절을 노래하고 줄 쳐진 창밖으로 짧은 가을이 흘러가고 오지 않을 편지를 기다리며 듣던 노래가 Jose Luis Perales 의 Y Tu Te Vas였다. 오늘 문득 이 노래를 듣고는 몇 잔의 커피를 마셨는지 모른다.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낙엽이 지면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언젠가 광화문 교보에서 책을 사서는 뭔가에 이끌리듯 구세군회관이 있는 좁은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기억은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 내려갈 때 떨어지는 낙엽처럼 내 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떨쳐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나에게 걷기란 늘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어 내려가다 문득 정동길이 궁금해 돌담길을 뒤로하고 정동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걷다 지틴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해 정동극장 앞에 주저앉은 것도 지친 다리보다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노랫말이 갑자기 입가에 맴도는 이유는 뭘까?
분명 내 기억 속의 그 길은 낙엽이 지는 길이었는데...
그 시절의 나는 누구에게도 나 자신을 보여주기 싫은 시기였기에 홀로 서울 살이를 할 때였다. 물론 그곳은 아는 이 하나 없을 것이라 여기며... 그 시기에 아마 서울을 통째 머릿속에 담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다녔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다니는 동선에 광화문이 있었기에 더욱 자주 걸었던 길이 아닐까.
오늘은 그 길을 걷고 싶어 진다. 비록 낙엽은 그때처럼 많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