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by 한천군작가

밤새 내린 비는

바람과 함께 왔었고

떨어지는 낙엽에

쓰고 싶은 말 적어

이 계절

익은 과일이 되어

언제 떨어질지 몰라하는

설레는 마음을

적고 적어

그때에 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봉해서 보냅니다.

참 고마운 사람 하나 있어

국화향 담아

이별과 가까운 벗이 되어버린

가을에게

떨어지는 홍시가 되어버린

툭 하고 터져버린

가슴이라도 보일까

적고 적어

높아만 가는 하늘 곁으로

불어 가는 안부를 씁니다.

잘 지낸다고 적습니다.


투명하기까지 한 어느 잠자리의 날갯짓처럼 엷어진 햇살에도 따가움이 숨었다는 것을 알아버릴 때 이미 가을이 가슴까지 밀고 들어왔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떨어진 잎들이 조용함을 깨우고 먼저 익은 감은 담 아래 떨어져 툭 터지는데 보고만 있어야 하는 가을이 정말 와 버렸는데 하며 오늘은 조금 더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다.

습관처럼 손에 쥐어진 책을 읽기 위해 앉은자리에는 마산항이 내려다 보이고 이황(李滉) 선생의 월영대(月影臺)란 시가 적힌 것을 보며 그곳을 찾아가 봐야지 한다.

월영대(月影臺)는 신라 말 문창후(文昌候),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대(臺)를 쌓고 해변을 소요(逍遙)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 옛날에는 그 아래가 모래밭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도심 속에 있어 그 옛날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본 그곳은 닫힌 문 때문에 담장 넘어 간신히 그 속을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老樹奇巖碧海堧(노수기암벽해연) 늙은 소나무, 기괴한 바위, 푸른 바닷가에
孤雲遊跡總成煙(고운유적총성연) 고운 최치원 선생 노닌 자취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네.
只今唯有高臺月(지금유유고대월) 지금 오직 높은 대에 달이
留保精神向我傳(유보정신향아전) 그 정신 남아있어 내게 전해 주네.

이황(李滉) 선생의 월영대(月影臺)

가을이면 편지를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기로 한다.

이십여 년을 몰래 써 오던 편지를 그만 쓰려고 한 것이 아마도 캐나다 있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처음 캐나다행에서는 일기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고 두 번째 캐나다행에서는 그것조차도 포기를 하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편지 쓰기를 접어 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이 오면 혼잣말로 "참 편지 쓰기 좋은 날씨다"라고 한다.

펜글씨를 배우고 편지글이 담긴 책을 친구들과 돌려보며 그 속에서 좋은 글귀를, 시집 속에서 좋은 시를 적어 옮기곤 하였는데 하는 생각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 님의 가을 편지

이 맘 때면 길가에서 참 많이도 들렸던 곡이다. 최양숙 씨의 목소리로 듣던 곡이 었는데 이동원 씨가 다시 불러 유행을 한 곡 가을편지.

이 곡도 아픔이 많은 곡이다. 김민기 씨가 만든 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앙정보부에 모두 압수를 당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니 그 시절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닐까. 양희은, 패티김, 강인원, 조관우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게 된 아름다운 곡. 80년대 초에는 최양숙이 풀 밴드에 맞춰 다시 녹음을 했고, 93년에는 작곡자인 김민기가 가을편지를 직접 부르기도 하였다. 막걸리처럼 텁텁한 목소리로 부르는 김민기의 가을 편지를 좋아했고 이동원의 구수하면서도 그윽한 목소리를 좋아하였지만 나에게는 최양숙의 목소리가 마치 샹송을 듣는 듯하여 좋았다.

가을은 모든 이에게 풍요로워 그런지 감성 역시 가장 풍성한 계절이 아닐까?

오늘 밤에는 편지를 쓰고 싶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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