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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Oct 22. 2016

추상 -3-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화백

군상의 탄생


군상(群像)
* 떼를 지어 모여 있는 많은 사람.
* 회화나 조각에서, 여러 인물을 하나의 주제 아래 형상화한 작품.

서양화의 모더니즘적 운동을 시작으로(1930년경) 야수파와 표현주의에 의한 화풍이 주를 이루던 유럽의 전통적 화풍에 동양의 수묵과 사군자를 접목시킨 서예적 추상이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개척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또 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적인 화풍이 두드러지는 군상 시리즈는 문자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 등 다양한 표현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화풍을 선보이다 후기에 가장 하국적인 화풍을 가진 대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군상 시리즈는 기존의 인물화가 가지는 소묘적인 기법이 아닌 마치 사군자에서 난을 치 듯이 몇 개의 간략한 선으로만 그려져 있으며 인물의 표정이나 입체감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배경 묘사가 없는 바탕에 자유롭고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표현되어 있다. 마치 동양화가 주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기라도 하 듯이 배경을 비워둔 것 역시 한국적인 미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종이에 먹, 12x25cm  1987년작

이 시리즈는 약 20Cm의 아주 작은 작품에서부터 약 300Cm에 이르는 대형 화폭의 작품까지 아주 다양한 크기의 작품이 있으며 대체로 수묵으로 표현을 하였지만 간혹 채색을 하기도 혹은 콜라주 형식으로도 작품을 만들었다.

한두 명의 인물로 혹은 수백 명에 이르는 많은 수의 인물을 담고 있는 군상 시리즈 중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시기, 그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뉴스를 접하며 대작 군중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일정한 띠를 형성하여 한 방향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 환희의 몸짓을 하기도 하고 격렬한 동작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인물 표현은 전통적인 인물화의 재현 방법에서 벗어나 수묵화의 자유로운 필치와 생동하는 기운을 보여준다. 마치 서예적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붓으로 글씨를 쓰듯 추상으로 그려진 인물 형상에서 서예적 필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군상 41x50cm  한지에 수묵  1982년작

동백림 사건과  백건우와 윤정희 부부 납치미수 사건으로 그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단절되었던 1977년 이후 더욱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고국에서 그의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1983년 프랑스 국적을 택하게 된다.

1985년 공식적인 마지막 개인전을 일본 도쿄에서 가졌고 비공식으로 평양에서 남북통일 염원 개인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개방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이른바 세계는 화해의 물결이 일렁이고 마침내 서울에서 그의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1989년 1월 1일의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열흘 후 그는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신이 안장된 곳은 고국이 아닌 페르 라세즈(Pere-Lachaise)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 유명한 

피의 1주일이라 불리는 파리코뮌(Commune de Paris)의 역사가 고스란히 잠든 곳이기도 하다.

또한 페르 라세즈(Pere-Lachaise)에는  유명인이 많이 잠들어 있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쇼팽, 발자크, 이브 몽땅,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 이사도라 던컨 등 유명인의 묘가 있어 현대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종이 꼴라주, 42x59cm 1987년작
"내가 나이가 많아서 싫지 , 돈이 없어서 싫지 "

"나는 당신의 예술적 성공을 위해서 살뿐 , 다른 것에는 관심 없다"

이응노 화백과 박인경 부부의 1958년 도 불후 대화다.

왜 이들 부부의 대화를 나는 잊을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빛과 그림자와도 같이 한 사람의 예술인이 하고자 하는 예술적 혼을 꽃피울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먼저 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에 박인경 여사의 이야기를 뺀 다면 끝을 맺을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인경 여사는 원래 문학소녀를 꿈꾸었고 국문학과에 지원하려고 입학원서를 내려가다가 이화여중 은사인 심형구(沈亨求) 선생을 만나 진로가 바뀌었다.  심 화백은 제자인 박인경에게 국문학과에 지망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과 출신은 과거에도 많았고 ,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며 미술과로 오라  고 권유했다. 이에 그녀는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말을 하고 아버지께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는데  "여자가 무슨 환쟁이냐"며 완강히 거절하고 "수 잘 놓으면 시집 잘 간다"는 자수과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수 과로 입학한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동양화과로 전과를 하고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동양화과에서 만난 친구가 금동원이었다. 그녀는 금동원 때문에 고암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박인경 여사는 실제로 "소꿉장난"이란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심형구(沈亨求) 
해방 이후에는 친일파로 분류되어 조선 미술 건설본부에서 제외되었으나,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가 설치되면서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1962년 8월 6일 사망했다.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고향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가고

서른에 처음으로
부산에서 배 타고
일본 가고

쉰넷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프랑스 오고

여든다섯에
처음으로 별나라 갈 때는 어떻게 갔을까?

지금도
그곳에서
그림
그리고 있겠지!  

박인경 여사의 시 - 고암은.   
박인경 여사의 작품

박인경 여사는 1949년 충무로 대원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장으로 고암이 바구니에 꽃을 들고 축하 차 찾아왔다. 운명의 여신은 이 만남을 40년이나 이어준 것이다. 이 만남이 사랑의 싹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여기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로 고암 이응노 화백이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 만남으로 사랑이 싹이 틀 것을 그 누구도 몰랐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40년을 함께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육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가 유부남과 결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을 것이다.

고암은 1951년 초 돈암동 박인경 집에 와 숨어 살다 시피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좌우익 사상적 대립은 인심을 갈라놓고야 말았으며 미술계 역시 좌우익 대결이 인민군 서울 점령으로 심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 시기 고암은 미술 동맹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집에 피신을 하였던 것이다. 경상도로 시집을 간 고모네로 피난을 가며 예산까지 고암을 데려다주겠다고-함께 피난길에 오르고 수덕사에서 이제 여기서 헤어지길 바라며 하직인사를 하지만 고암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때 고암은 박귀희 여사와 이혼을 할 것이니 정식으로 결혼을 하자고 매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고암에게 내가 당신과  결혼식이나 하자고 사는 게 아니라 , 당신의 예술을 꽃피우게 하려고 사는 것 이라며 목적을 분명히 하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박귀희 여사는 고암이 파리에서 보낸 편지에 이혼을 요구하자 고암의 출세길에 지장이 될까 봐 이혼 수속을 허락해 준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고 말을 하며 여전히 수덕여관에서 그를 기다리다 2001년 92세를 일기로 그의 곁으로 가고 말았다. 그녀가 기거하던 방에는 젊은 시절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과 이응로 선생이 남겨준 갈대꽃이 핀 강가에 홀로 서있는 오리 그림이 걸려 있을 뿐이다. 그녀는 그 그림을 보며 고개를 내밀고 어느 곳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처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여보
벌써 당신의 20주기가 되었군요.
이제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내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내 나이 지금은 같아졌습니다.
이제 진정 사랑이 무엇인가,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이 사랑이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동갑이 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누구보다
계속 계속 오래오래 사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쁜 ‘오늘’입니다.
이번 ‘20주기 특별전’을 축하합니다.  

박인경 여사의 시 - 고암 20주기 특별전’에 부침  
군상 1978작 종이에 수묵(100 x 150 cm)


군상-한지에 수묵 1980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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