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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Nov 10. 2016

같은 하늘 아래 -5-

詩와 음악과 이야기

강가에 서 있습니다
흘려보내 버리려 했던 하늘은
끝내 보내지 못하고
강물에 발을 디뎌보며
하늘의 숨결을 닮은
황톳길을 보듬고서
바라본 작은 숲에는
인기척에 놀란 그리움이
키 큰 나무 뒤로 숨는데
시린 물방울을 머금은
추억의 잔상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Debbie Gibson - Lost In Your Eyes가 빌보드 13위에 랭크되고 가느다란 한줄기 조명 아래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둘의 사랑을 귓가에다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정사각의 테이블 중앙에는 여린 꽃병이 장미 한 송이를 물고서 그 빛을 바라보고 있고 우린 세상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눈빛과 서로의 목소리 그리고 낮게 깔리는 숨소리만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음악이 우리의 틈으로 스며들고 그제야 우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도 그녀의 곡이 끝이 나고 DJ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면서 우리의 정적도 깨진 것이었다.

"또 머라 사기 치노"

"네비 둬 너도 저기 들어가면 그러잖아"

"나는 최소한 사기는 안 친다"

"호호호 그래 음악 이야기만 하시니까요"


그 시절 청춘들의 쉼터는 뭐니 뭐니 해도 음악다방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뮤직박스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그 속에는 만여 장의 LP판이 꽂혀 있고 DJ는 묵직한 목소리로 소녀들의 마음을 속삭여 주었기에 늘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작은 메모지에 듣고 싶은 곡을 적어 뮤직박스 안으로 넣는데도 수줍어하던 그 시정 소녀들이 눈에 아른하다.

나는 가끔 집에서 가까운 청석골이라는 곳을 간다. 마시지 않는 동동주를 시키고 파전과 사이다를 시키고는 작고 아담한 뮤직박스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절 자주 듣던 곡을 신청하기도 한다.

 

나이 많은 아저씨가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게 만들어주니 좋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내게는 자주 갈 수 없는 곳이지만 그래도 가끔 그리움이라는 녀석이 내 등을 떠 밀면 나도 모르게 구석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

눈 감고 있으면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길을 걸을 때면 리어카에서 유행하는 음악이 서로 다투기라도 하 듯이 여기저기에서 울리고, 음악다방에서 듣는 신청곡이 좋았고, 늦은 밤에는 라디오를 들었던 그 시절...

지금처럼 스마트한 세상에서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추억의 아날로그가 그리운 건 사실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서울을 가면 그 시절 향수가 그립다. 종로의 무아 다방, 양지 다방 그리고 내게 음악을 알려준 잊을 수 없는 명동의 꽃다방 등이 떠 올라 그 시절 그 골목을 서성이기도 한다.

내 고향에도 쟁쟁한 음악다방들이 즐비했었다.

남강 다리목의 빨간 풍선, 농협중앙회 지하의 내가 너를 부를 때, 진주극장 뒤의 타미 등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자주 못 가니 그 시절 추억 또한 그곳에 그대로 잡들어 있고 언제라도 내가 깨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나는 그 시절의 추억을 하나쯤 다시 만나보고 싶다.

찾아보면 그 시절 추억의 장소가 여태껏 살아 숨 쉬는 곳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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