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에서
오가는 그림자 사이로
시간이 뚜벅거리며 걷는다.
딱딱한 의자는 길게 누워있고
누굴 따라왔는지 낙엽 하나가 앉았다.
열차표 하나 받아 들고
혼자 앉은 낙엽 곁에서 기찰 기다린다.
2016.11.10
오랜만에 경주행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 기다린다. 마산역에서 가장 빠른 기차가 동대구역, 1시간 20분 기다리면 경주 가는 무궁화호가 나를 맞이할 것이다. 미리 준비한 국화차를 한 모금하며 표를 끊는 사람들과 앉은 사람들 그리고 기나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관찰한다. 별 다른 의미는 없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라고 해 두자. 역에 오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예전 맛이 나질 않는다. 작은 구멍 사이로 "경주 한 장이요"라고 외치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아니 어쩌면 사람 냄새가 그리운지도 모른다. 저기 기계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가 떠 오른다. 중학교 1학년 봄소풍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탄 것이 나의 첫 기차였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릴 적에 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렿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진주역에서 하동 가는 열차였다. 비둘기호-지금의 지하철과 같이 세로로 길게 늘어진 의자에 앉아 가던 말 그대로 칙칙폭촉이었던 느린 기차를 타고 봄소풍을 가던 그때가 그립다.
조용하다. 아니 이곳의 가을은 이제야 익어간다. 손에 들려있는 텀블러 속의 진한 국화향을 음미하며 자연스럽게 걷기를 시작한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지금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흐리기만 하다. 아니 저녁에 잠깐 비가 온다고 한다. 우산을 사야 하나 하는 고민을 잠깐 하는 사이 나는 달리는 택시 안에서 조용히 창밖을 본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밖으로 아웃렛이 반듯하게 줄 지어 있다. 그리고 또 얼마를 달렸을까. 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며 차가 섰다.
양동마을에 도착을 한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기억이 있다. 아마 요맘때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초가(草家)
알매흙을 바르고 발라
알매집인 줄 알았더니
묵은 초가 걷어내고
볏짚을 이어 따숩게 덮었다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띠를 둘러 주었으니 띠집이련만
보는 이 모두 초가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흰 연기 쏟아 내는
초가삼간(草家三間)은
저녁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2016.11.10
알매흙 : 흙과 지푸라기를 물로 이긴 흙
초가삼간(草家三間) : 부엌 1칸, 방 2칸으로 된 초가를 이르는 말.
양동마을은 약 520년 전 형성되었다 하는데 현재 월성 손씨 40여 가구, 여강 이씨 70여 가구가 마을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마을의 전형으로 1984년 중요 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한옥 외에도 초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토담이 정겹고 동경이가 짓고 있는 너무도 아름다운 마을이라 경주에 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다. 지겨울 것 같은데 늘 새롭다. 아니 마치 처음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매번 새롭기만 하다.
점심 겸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시 걷기로 한 것이 안압지까지 와 버렸다. 길가에 핀 꽃들을 보는 재미에 빠져서 그리고 잠깐 내린 비로 떨어진 낙엽을 보는 재미로 걷다 보니 그리 되었다. 안압지의 밤은 가을까지도 잊고 있는 듯하여 좋다. 비릿한 가을비 내음이 한목 더 하는 듯하여 더욱 운치가 있어 좋다.
달이 비치는 연목이란 뜻의 월지(月池)는 달빛뿐 아니라 모든 것을 담아 비춰주는 거울 같은 곳이다.
월지(月池)는 안압지(雁鴨池)는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 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 월지(月池)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을 찾은 것이니 우리에게는 그리 오래된 이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