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by 한천군작가

도심의 불빛은

별빛을 삼켜버린

상실의 도시였다

무형의 그리움이

비수처럼

밤을 반토막 낼 즈음

갈국화는 절로 환하게

지상의 별이 되었고



우리 선조들은 국화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조용한 밤 국화의 그림자까지 감상을 하며 사랑을 하였으니 국화의 향기와 고운 자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화가 피는 계절이 오면 길 가다가도 멈추게 된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의 모습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고, 菊花之隱逸者也(국화 지은 일자야)라 하여 국화는 군자 가운데서도 은둔하는 선비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할 수 있다.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가장 사랑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 고고함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국화는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의 傲霜孤節(오상고절)이라 하여 국화를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鮮鮮霜中鞠(선선상중국)
旣晩何用好(기만하용호)
揚揚弄芳蝶(양양롱방접)
爾生還不早(미생환불조)

서리 속 곱디 고운 국화는
늦은 철 무슨 좋은 일 있으랴
까불까불 꽃 희롱하는 나비야
너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유 (韓愈)의 시중에서


살아오며 가장 아름다운 국화를 본 것이 캐나다로 떠나기 전 진주시청 앞에서 열린 국화분재를 보았을 때였다.

그때의 느낌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다름 아닌 늙은 호박만 한 돌을 국화의 뿌리가 휘어 감고 그 위로 승무를 추는 것처럼 아름다운 가지 위로 하얀 국화가 맺혀 있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석부작이었는데 그것이 그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워 보인 것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국화가 아닐까 하는 맘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화는 피었다. 집 앞 도로가에도 국화 화분이 서리를 맞아 아침이면 더욱 반짝이는 별이 되어 있다. 그때와는 사뭇 다른 너무도 사랑스러운 국화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이른 아침 꽃에게 다가서기도 한다.

진정 가을 하늘의 별이 지방의 꽃으로 다시 핀 것 같은 아름다움에 저물어가는 가을이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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