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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Jan 10. 2017

같은 하늘 아래 -18-

세찬 바람이
몸을 날리듯이 들이쳤습니다
까무룩 하여
깊이를 모를 어둠으로
고여있는 듯이 조용한 하늘은
흙을 물어뜯으며
그대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모질게도 비비적거리는
가슴 아파 오는 이별에
당혹스레 불안한 하늘이
그대 하늘에게 눈물짓는군요
같은 하늘 아래의
또 다른 슬픔으로
눈물이 아파 옵니다.


인연은 하늘이 정해 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하늘은 언제쯤 인연을 이어 줄런지라는 혼잣말을 할 때가 부쩍 늘었던 어느 날.

몸이 거부를 하는 술을 마시기도 하였던 어리석은 어느 날을 떠 올려 본다.

그해 겨울 강원도 철원은 눈 오는 날이 많았다.

군인에게 눈은 그저 바라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다. 아주 귀찮은 존재인 것이다.

쓸고 또 쓸고 뒤 돌아보면 다시 쌓이는 귀찮은 존재였다.

그런 눈이 쓸쓸하게 보였고, 근무를 위해 상황실로 걸어가는 내내 뒤를 따라 걸어오는 눈발은 더욱 굵어졌었다.

지금도 눈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간간히 흑백 필름처럼 천천히 눈앞에 아른거린다.


1990년 어느 주말.

TV에서는 동작 그만이라는 콩트가 막 시작을 하고 군인들의 생활이 저런 거구나 하며 한가롭게 그것을 보다가도 약속시간을 알리는 긴 추를 덜렁거리던 괘종시계의 소리에 놀라 어딜 간다는 말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던, 주말이면 어떤 노래 가사처럼 5분 대기조였으니 그렇게 달려 나갈 수밖에.

그 시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음악다방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그 사람과 늘 들어주는 쪽인 그 남자가 음악소리의 높낮이에 맞춰 말을 하는 그 녀의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사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때문에 무슨 이야긴지 잘 안 들릴 때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을까?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두 사람은 가로등 불빛이 예쁜 강변을 걸었고 그 녀의 집 앞에 도착하면 그 남자를 다시 중간 지점으로 바래다주고, 그 남자는 밤길이라 안돼 하며 다시 그녀의 집 앞까지 바래다 주기를 서너 번 후에야 손을 놓아주던 그녀.

그 시절 누군가도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남자는 그렇게 홀로 그 길을 걸어왔고, 가끔 그 길을 다시 혼자 걸어 보기도 하였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남자는 그 가로등이 예쁜 강변을 그렇게 걸었을 것이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기형도 빈집

https://youtu.be/LtCF3aTKe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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