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사람들의 배려가 사라져 간다.
버스의 노약자석은 이미 예전에 일반석으로 쓰이고, 그나마 아직 지하철 노약자석은 노약자들에게 양보되고 있다.
회사, 학교, 학원 등
어릴 때부터 더 극심해지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인들 위에 서야 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일까,
아니면 학업이나 사회생활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일까,
나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기주의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개인주의는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고, 타인에게서 피해를 안 받는 삶,
이기주의는 자신이 피해를 안 받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삶,
주변을 보면 개인주의보단 이기주의가 더 많은 듯하다.
배려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서 강요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에,
상대가 배려 없는 태도를 취하면, 나 또한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
이러다가 점점 나도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이 몸과 정신에 자리 잡히는 건 아닐까,
그 중간을 지키기 위해 나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이기주의가 많아진 원인 중 한 가지가 호의를 베풀면, 호구로 대하는 이들 때문에 자기 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혔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면 고맙기보단 의심이 먼저 드는 시대,
호의는 곧 나에게 더 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작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시대인 듯하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광역 버스에서 만삭인 여자가 서서 약 두 시간 거리를 가는데, 그 누구도 자리를 내어주는 이가 없던 경우도 있었고, 몸이 편치 않은 사람이 있어도 자리를 내어주는 이가 없었던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사실 양보와 배려라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양보와 배려하는 이가 멍청하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이용만 당하는 것으로 인식된 사회니 굳이 자신이 피해를 보면서 타인을 도와줄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다만, 내가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배려한 상대에겐 아주 많은 불편함이 사라질 수 있으니, 굳이 내가 물리적으로 얻는 게 없다 해도, 그 사실 하나만으로 심리적으로 긍정의 생각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기에, 나는 배려와 양보를 하고 싶다.
호의를 호구로 생각하는 이에겐
차가운 모습으로 대하면 되고,
호의를 호의로 되돌려주는 이에겐
더 따뜻한 모습으로 대하면 될 테니,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당했으면,
또는
얼마나 삭막한 환경에서
살았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굳이 도와주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다.
단지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고,
공격적인 말보단 보듬어주는 말을 해주는
그런 사회가 없어지는 듯하여 씁쓸하다.
작은 배려가 퍼져나가 큰 변화로 일어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