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일하는 삶, 일하기 위해 사는 삶
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오늘 업무 중에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일을 위해 사는 것일까,
요즘 밀려드는 업무 때문에 멍해지는 시간이 많아졌고, 정말 잡념 한 톨 남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무'였다.
생각에 부하가 걸린 듯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업무 관련 올해 트렌드와 경제, 사회 기사를 보며 생각이란 걸 했었는데, 요즘은 어떤 기사를 봐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경지까지 올라왔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생각에 과부하가 걸려버린 것이다.
몸은 하나지만 여러 업무가 몰려서 우선순위 정하다가 지쳐버리고, 각 업무 요청자들의 무언의 압박이 담긴 메일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요청자들도 위에서 압박을 받고 있겠지, 생각하며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도 한다.
업무 진행 건으로 하루 쓸 수 있는 생각의 양을 초과한 탓일까
어느 수준에 도달하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게 됐다.
어쩌다 운 좋게 이직한 회사는 집에서 편도 2시간 정도가 걸리고, 아침 5시 20분에 기상하고 씻고, 출근 준비 후 6시 40분 지하철을 타면, 거의 만석이다.
나름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지하철이 만석인 것을 보면, 다들 대단해 보인다.
이직한 지 석 달 밖에 지나지 않은 나의 몸과 정신은 지쳐가는데, 매일 아침마다 보는 지하철 속 많은 사람들은 몇 년, 아니면 수 십 년을 이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으리라,
그 모습을 보면 난 정신력과 체력이 나약하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원래 나의 가치관은 내 삶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듯한 느낌에 스며들고 있다.
유복한 가정은 아니라서, 20대는 매달 수입이 필요했고, 취업을 위해 밤낮 일하며 학업과 자격증 취득 공부를 병행했다.
잘 살기 위해서 나름 노력한 20대의 삶이었다.
30대 초반인 현재,
20대의 나름 노력한 것들과 운이 따라준 덕분에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이직했지만 사람의 욕심이 큰 탓일까, 금전적 여유는 생겼지만 내 삶의 여유가 없어졌다. 업무 외에 모든 시간이 사라져 버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직 준비 시기에는 시간이 많고, 다양한 것을 접하며 나의 삶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매일 줄어드는 잔액을 보면 돈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마치 잔액의 숫자는 나의 남은 수명 같았고 게임 속처럼 체력 수치가 '0'이 되면 캐릭터가 죽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절실하게 일을 구했고, 취업이 된 후 초반엔 너무 좋았다.
매달 나의 생명 수치와 같은 잔액이 올라갔기에,
석 달이 지난 현재,
생명 수치는 오르고 있지만 왜인지
죽어가는 기분은 떨쳐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 생명 수치는 오르지만 나의 시간은 죽어가고 있는 듯하다.
빈 껍데기가 잠을 자고, 출근 후 기계같이 진행되는 업무 후 퇴근, 다시 잠을 자고 출근을 반복하며 쉬는 날은 취미 즐길 생각조차 들지 않고 잠부터 자게 된다.
나는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위해 사는 것인지,
어떤 삶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수입이 절실한 취준생들 앞에서
엄살 그만 부리자. 라며 합리화를 하고,
쓴 인생을 버티기 위해 쓴 술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과 초점 없는 시선으로 폰을 보는 사람들, 표정을 잃어버린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빼곡한 지하철을 타며 오늘도 난 퇴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