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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Apr 27. 2018

나의 브랜딩, 나의 브랜드 - OSULLOC

브랜드 플래너의 프로젝트 썰 #5. 오설록 브랜딩 


나의 브랜딩, 나의 브랜드 - 오설록!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오설록은 브랜드 플래너로서 모든 것을 다 경험하게 해준 참 고마운 브랜드다. 함께한 시간도 길었고, 또 다양한 프로젝트로 오설록을 브랜딩을 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그리고 감사한 기회가 있을까.


오설록을 처음 만난 건 내가 1년차였을 때다. 2010년. 여타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의욕이 굉장히 앞섰던 시기였는데 어느정도 역사가 쌓인 브랜드인 만큼, 컨설팅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없다. 나는 그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도 모른채, 그냥 열심히 따라갔다.


영국에서 잠시 지냈던 경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유럽의 차 브랜드들을 몽땅 조사하는 일을 담당했다. 정작 영국에서 지냈을 때는 알지도 못했던 브랜드들이 많았는데, 나름 영어 공부도 됐고 또 영국의 몰랐던 브랜드들도 많이 알게 되서 그 일들이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신나게 일을 하고 보고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리아쥬프레르 / 포트넘앤메이슨 / 해롯 : 브랜드 히스토리, 라인업, 원료, 공간 등 정말 눈알 빠지게 공부했다.


실제로 그 공부(!) 들을 바탕으로, 다시 영국에 갔을 때는 해롯이며 포트넘&메이슨이며 유명 티 브랜드들을 찾아다녔고,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누군가가 브랜드의 철학이나 스토리, 그리고 제품들을 알려달라고 한다면 썰 정도는 풀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프로젝트를 하면 좋은 점이, 해당 카테고리에 대해 준전문가는 될 수 있어 지식이 절로 쌓인다는 것이다. 공부도 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브랜딩은 이래서 매력적이다.




처음 오설록 프로젝트를 할 때는 제안했던 오설록의 컨셉이나 실행방안(보통 액션 가이드라고 칭했다)들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게 그래서 어떻게 되는건지. 아마 업무업무를 쳐내기에 바빴기에 프로젝트를 마음으로 이해하는 시간이 부족했으리라. 나의 능력 또한 부족했었을테고. 


심지어 계속 되는 야근에 나는 내 몸의 한계를 느껴 정말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실제로 '바람좀 쐬고 올게요' 라는 핑계아닌 핑계로 밤 12시 즘 됐던 시각에 가로수길을 한없이 걸었던 적도 있었다. 사실 그대로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과 특성상 밤을 새보지 않았던 건 아닌데, 이건 차원이 달랐다. '직장인의 야근' 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던 때였을 거다.


시간이 지나, 오설록의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처음에 우리가 제안했던 파일들을 수시로 열어보고는 했다. 아 이래서 이런말을 한거구나, 아 이래서 이런 이미지를 제시한거구나, 아 이래서 이랬던 거구나. 

1년차때는 보이지 않았던것 들이,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 한거다. 아마 오설록이 차근 차근 구현해 나가면서 브랜딩의 결과물이 보여지는 것도 있었고, 나도 오설록만큼 성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당시 오설록 팀장님과 팀원분들이다.
특히 오설록 팀장님은 우리도 외우지 못하는 페이퍼의 내용들을 정확하게 페이지까지 기억하시며 해당 내용들을 읊으실 정도였다.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정작 그 페이지를 만들고 제안한건 우리인데, 우리가 먼저 아니 최소한 나라도 내용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건데. 팀장님은 우리의 페이퍼를 거의 매뉴얼로 삼다시피 하나하나 짚어가고 있었고, 이후 나는 페이퍼에 쓰는 글 하나, 이미지 하나를 더 신중하게 고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든 이 페이퍼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니 정신 바짝 차리게 되더라. 

단순히 예쁜 이미지, 예쁜 글을 고르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조금은 투박하고 멋이 없어도 진심을 다해, 상대방이 그리고 소비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게 중요했던 거다. - 이것이 브랜드에 있어 진정성의 출발점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 중에 또 하나 기억나는 건, 비주얼에 대해 논의 중이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녹차라고 무조건 녹색으로 해야해요? 파란색 주황색 일수도 있잖아요.'

갑자기 팀장님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셨고 나는 뭔가 이상한 말을 했나, 혹은 너무 주제넘는 말을 했나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팀장님의 말씀. 

"아. 아정씨. (오설록 분들은 꼬박꼬박 '-씨'를 붙여 주었다. 직급이 생겼을 때는 '-님'을 붙여 주었다. 별거 아닌데 이런데서 감동받았던 막내였다.) 내가 오늘 대표님 미팅을 하고 왔는데 똑같은 말을 듣고 왔었어요."


이후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데 더더욱 서스럼 없이, 최대한 고객의 관점에서 의견을 드리고자 했다. 팀장님은 특히나 오설록에 새로 합류된 멤버의 의견을 중요시 했는데, 이는 가장 오설록과 차 카테고리에 저관여 이면서도, 가장 객관적인 소비자의 시선일 거라 생각하였고, 당시 오설록은 회사원의 음료가 아닌, 20대의 음료가 되는 일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감동 에피소드가 정말 많다. 실수를 할 때도 모두의 앞에서 지적 하는게 아니라, 회사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팁을 주시는데 살짝 불러내어 말씀을 주셨다. 사실 클라이언트니 이런 것들을 챙겨줄 필요도 없었거니와 사장님이나 이사님께 주의를 줄 수도 있었는데 부드럽게 조언을 주시니 더욱 정신 차리게 되었다. 정말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자 팀이었다.




컨설팅 프로젝트는 짧으면 2개월 길면 3개월 넘게 진행이 되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큰 편이었다. 하지만 오설록은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며 우리가 제안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오설록은 흐트러짐 없이, 하나의 점을 보고 모두가 움직여 나갔다. 오설록팀이 함께 만들고 제안한 컨셉과 실행방안들을 끝까지 잘 지켜내준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오설록은 과거의 '구수~하게 편하게 먹는 녹차'에서 20대들이 스타벅스 가듯, 맛있게 즐기는 '차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오설록 브랜드의 PM이 되면서 마치 BM처럼 브랜드를 관리하고, 작은 것이라도 논의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며 진정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어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오설록 브로슈어 & 팸플릿(2011ver.) / Story & Visual Planning, Writing을 담당 했다. 


영국 디자인 회사가 신규 BI를 디자인 하기에 앞서, 컨셉추얼이 오설록의 철학과 컨셉에 대해 PT를 했었다. (이미지 : 오설록 홈페이지 캡처) 


컨셉 정립이 끝난 후에 후속 작업이 계속 되었다. 우리의 가이드대로 패키지부터 커뮤니케이션, 제품라인업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재정비 되었고, 패키지에는 내가 직접 기획하고 라이팅한 것들이 적용되어 어디가서 '내가 했어' 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어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브랜딩 컨설팅 혹은 플래닝의 업무는 페이퍼로만 존재하기 마련이라 이를 누군가가 구체화 해주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오설록은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내가 많이, 그리고 깊숙히 참여할 수 있어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브랜드이다. 스토리와 비주얼 정립, 패키지와 브로셔의 스토리 라이팅, 그리고 크고 작은 오설록의 공간들을 플래닝 했던 것까지. 큰 것부터 작은 것 까지 다 기억날 정도로 오설록의 무언가를 보면, 아 그때 그거 그렇게 했었지- 라며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오설록 프로젝트는 신규 매장 컨셉 기획이 마지막이었다. 왠지 이 프로젝트로 이제 오설록은 끝날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그랬는지,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오설록의 가치와 이미지를 '터지게' 만들고 싶었다. 

20대의 '맛있는 차'가 아닌, 정말 '멋있는 차'로 '차를 마신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오설록을 통해 알게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소비자들도 '제대로 먹는 것'에 대한 니즈와 트렌드가 있었기에 분명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 그릴 줄 아는 유능한 팀원 덕분에 마지막 프로젝트는 '간지나게' 잘 끝낼 수 있었다. 공간은 '글'로만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어 항상 그림이나 레퍼런스 이미지를 많이 찾고 보여주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팀원이 있어 우리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보여 줄 수 있어 좋았고, 자신감있게 제안할 수 있었다.

게다, 과거와 달리 굉장히 많이 생겨난 여러 티 브랜드들을 보며 이제는 정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신나게 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오설록 프로젝트, 신규 매장 컨셉이 적용된 오설록 현대미술관 점 (이미지 : 일간스포츠 https://goo.gl/d3JVVz)




아직도 오설록을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아 컨셉플래너란 이런 일을 하는구나. 브랜드를 매니징 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무엇보다 일을 하는데 있어 경험하지 않고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나름의 신조가 생겼었다. 경험하고 또 경험해봐야 소비자가 무엇을 만족하고,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그리고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 감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의 브랜드가 이렇게나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을, 그리고 한 사람의 직업정신까지(!) 갖게 할 수 있을까. 정말 오설록은 나에게만큼은 '브랜드業의 시작이자,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오설록이여, 멈추지 말고 더 흥해주세요! 

더 멋진 Tea Culture Creator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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