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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abba Jun 19. 2018

그때 그사람들과 지금 우리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영화 : 그때 그사람들 (2004)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 영화는 많다. 외국에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치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동안의 압력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 탓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국내 정치영화라고 한다면 몇백년 전의 사극에서 오히려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국내 상황에서 당당히, 그 때 그 사건을 다룬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그때 그사람들' 이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


영화는 픽션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오프닝은 '부마항쟁'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며 이제 시작하는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클로징 역시 박정희 전대통령의 실제 장례식 영상이 쓰였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일까.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때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벌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하루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빠른 호흡으로 보여준다.


그 날 오전.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는 고위간부직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각하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지만 실은 각자 자신의 살길을 궁하는 사람들이다. 각하게에 충성할 것인가, 지금 이 세상에서 벗어날 것인가. 현재만 보며 충성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부장'은 권총을 움켜지며 외친다. '고로시떼야르(죽여버리겠다.)'




그 날 저녁. 궁정동 안전가옥에 모이는 '할아버지'(각하의 별칭)와 고위 간부급들의 저녁식사. 그리고 초대받은 '수봉'과 연기 지망생의 가무가 더해지며 분위기는 무르 익는다. 그리고 박부장의 행동개시. 총알 소리와 함께 그를 따르는 '주과장'과 부하들은 발빠르게 움직인다. 이제 다 끝났다고. 다른 세상이 올거라고.


하지만 야속하게도 세상은 그리 쉬이 바뀌지 않는다. 충성심 가득한 사람들은 김부장을 체포하고, 각하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이미 죽었지만 그의 명성에 혹여 누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김부장의 행동개시는 결국 이렇게 끝이 나지만, 지금 우리는 그날의 사건을 '실패'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김부장의 한 발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트리거'가 된 셈이니깐.




누군가 연상되는 "그사람들"


영화 '그때 그사람들' 에서는 성과 이름이 모두 나오는 인물이 없다. '김부장'이나 '주과장' 처럼 성과 직함을 붙여 이름을 부르거나,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는 '수봉' 역시 성 없이 이름만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김부장이 '김재규' 일것이라는 것, '수봉' 역시 '심수봉' 일 것이라는 걸.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밝혔듯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을 뿐 모든 것은 픽션이기에 김부장이 '김재규' 라는 것도, '수봉'이 심수봉이라는 '팩트'는 없다.


영화를 만든 임상수 감독 역시 알고 있었을 거다.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걸. 그래서 최대한 숨길 것은 숨기면서 교묘하게 그 날의 사건을 다루고자 하였지만, 그마저도 보기 싫었는지 영화는 소송을 당한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은 영화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은 상영 금지는 아니지만, 장면을 삭제하면 상영 가능하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그 장면이 바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다. 상영 당시에는 아래와 같은 자막으로 삭제 장면을 대신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때 그사람들'은 삭제 장면이 복원된 버전으로, 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오리지널 버전의 '그때 그 사람들'을 상영했다. 창작자의 권리와 우리가 찾은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을테다.



한국의 역사, 일본어로 결정되던 그 때

국내 영화이지만, 자막 또한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는 '불편한' 영화다. 한국 영화인데 도대체가 왜 내가 자막을 읽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한국어를 쓰다가도 비밀스러운 말이나 중요한 순간에는 일본어를 사용한다. 각하를 죽이기로 한 중요한 순간에조차 한국어로 내뱉기 보단, 일본어로 외친다. (고로시떼야르!)

 

하지만 딱 한순간만큼은 일본어를 쓰는 것이 짜릿한 쾌감을 안겨 줄 때가 있는데, 바로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며 외치는 순간이다. "다카키 마사오!" (다카키 마사오는 박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이다.)



'수봉'의 노래로 완성된 '그때 그사람들'

엔카를 부르는 수봉 역의 김윤아

'그때 그사람들'의 출연진을 보면 의문이 드는 배우가 있다. 바로 가수 '김윤아' 이다.

김윤아가 음악 영화도 아닌, 정치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궁금하게 만든다. 그녀가 어떤 연기를 펼치는 걸까. 하지만 영화에서 김윤아는 한 인물로서의 역할보단 극의 '서정'을 담당한다. 극 중에서 부르는 그녀의 노래가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걸 보면서 왜 다른 배우가 아닌 김윤아가 '수봉'역에 캐스팅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한국 고위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엔카를 부르는 장면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한국 가요가 아닌 일본 가요라니.


그녀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는 엔딩에서도 사용된다. 박 전대통령의 장례식 모습과 함께 자우림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가 흘러나온다. 박 전대통령은 죽었지만, 여전히 사회는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을 암시한다.



이 배우들 조합, 어디서 본 것 같은


영화를 가만히 보다 보면, 어쩐지 인물 구도가 낯이 익다. 맞다. 바로 영화 '타짜(2006)'에서 본 적 있을 것이다.

역할비중이 큰 주조연급의 백윤식과 김응수, 김상호 등의 배우들이 타짜에서도 비슷한 비중으로 출연을 하기에 보다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집사(조상건 역)는 어쩐지 타짜의 '너구리'와 매우 비슷하다. 말은 많지 않지만, 적재적소에 필요한 언행만 보여주는 성격이 닮았다.


+) 잠깐 스쳐 지나가지만 배우 봉태규와 정우도 나온다. 그 땐 못알아봤던 그 배우들.




최근 몇년에야 사회정치를 비꼬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때 그사람들' 만큼이나 민감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그사람들' 말고 제대로된 블랙코미디가 있긴 한가 싶다.


진지하게 흘러가는가 싶으면 사회와 인물을 비꼬는 대사로 피식하고 웃게 만들고, 액션 장르인가 싶다가도 '수봉'의 애절한 노래 때문에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밖에서는 자유를 외치는 청년들이 죄인처럼 끌려가는데, 각하는 '안전가옥'에서 여대생의 품에 안겨 위안을 받는다. 세상의 짐을 다 진 사람마냥, 자신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다는 설움이라도 가진 것 마냥. 정부와 각하는 그들만의 자유를 만끽할 뿐, 이세상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없다며 그들 자신을 정당화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부장이 택할 수 있는 것은 '행동 개시' 뿐이었다. 일단 '주범'을 처치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잡혀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 또 한번 웃게 된다. '각하'와 국가에 대한 깊은 충성심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똑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은 잡혀 들어가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불과 2년 전에 봤다면 느낌이 굉장히 달랐을 거다. 그의 핏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때 그사람들'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컸을 거라 생각한다. 다행히도, 지금의 세상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없으며, 올바른 다수가 만들어가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났다.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도 하고, 정당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이게 과연 올바른 사회 모습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때 그사람들' 처럼 내 의견을 말한다고 죄인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다. 윗선의 눈치를 보기보단, 그들이 우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든 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거다. 김부장이 늘 장전한 총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트리거'에 손가락을 걸고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세상이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를 조심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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