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플랫폼 변천사
1.
생각해 보면 참 많은 플랫폼을 거쳐왔다. PC통신은 엄마의 불허로 이용해 보지 못했고, ADSL / 메가패스가 깔리고 나서부터는 엠파스, 야후, 리리코스, 그리고 다음 등 수많은 사이트에 내 족적을 남기며 메일도 몇 개를 만들어놨는지. 그리고 네이버로 정착했지만 사실 내가 친구들과 노는 곳은 '세이클럽'이었다. H.O.T. 오빠들도 세이클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이디를 추적하며 취향따라 클럽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보는 친구들과는 밤새 '채팅'으로 놀았다.
아, 그때도 셀카는 찍었다. 추억의 '하두리캠'.
2.
그러고선 세이클럽도 뭔가 이상한 집단이 되어가고, 윗동네에선 '싸이월드' 쓴다더라라는 말과 연예인 미니홈피로 서서히 싸이월드로 옮겨 갔다. 그래도 나는 배신할 수 없다는 이상한 고집으로 계속 세이클럽을 썼지만, 친구들이 모두 떠나기에 나 역시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뭔가 세이클럽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3.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쓴다는 것은 쓰기 싫어지는 성향이 있다. 이 영화 대박이래, 라면 왠지 안 보고 싶고 이 음악 겁나 좋대, 라면 왠지 안 듣고 싶다. 응, 그건 니 취향~ 이라며 무시하는 걸까 아니면 나는 대세에 끌리지 않겠어 라는 마음일까.
어쨌든 그즈음에도 나는 친구 하나 쓰지 않는 '마이스페이스'에 입성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hotmail을 꾸준히 쓰고 있다.
마이스페이스에서는 뭘 했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지 않으니 재미없었고, 예쁘지도 않았다.
4.
잠깐의 외국 생활에서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계속되었다. 한국어는 일절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노트북도 두고 가서 나의 PC 사용은 오직 어학원에서만 가능했는데, 이게 외국인지라 접속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가끔 안부를 적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올 때 즈음 '페이스북'이 나타났다.
5.
싸이월드가 한국 커뮤니티라면, 페이스북은 외국용이었다. 애초에 시작을 외국 친구와 'keep in touch'하기 위해 개설했던 터라, 어쭙잖은 영어로 피드를 채우고 몇 안 되는 친구도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던 지라 영어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싸이월드를 할 수 없었기에 연락하며 지내기 위해선 페이스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6.
그런데 하다 보니 페이스북이 점차 재밌어졌다. 한국 친구들도 빠른 속도로 가입을 했고 어느새 외국 친구들보다도 한국 친구들이 훠어어얼씬 많아졌다. 오히려 외국 친구들은 페이스북을 잘 하지 않았다.
취직을 하고서부터는 온갖 브랜드, 마케팅, 트렌드 등 사이트를 팔로우하며 소식들을 받아보며 마치 '모든 세상은 페북으로 통한다'는 것처럼, 페북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잘 써먹기도 했다.
트위터도 한 때 잠깐 했었지만, 나와 성향이 맞지 않아 미련 없이 탈퇴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주고받은 멘션도 있었는데.
7.
그리고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의 등장. 140자도 못 견디겠는 시각 전문가들을 위해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그야말로 눈이 돌아가는 신세계였다. 피드를 구경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세상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멋진 사진을 찍는지, 어디서 이런 디자인을 바잉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핀터레스트는 가끔 이미지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활용해왔고,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과는 달리 나만의 개인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써왔다. 지금까지도.
8.
이제 페이스북은 점점 지루하고 고착화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신기능들이 속속들이 발표되지만, 나는 글쎄, 물음표만 남길뿐이다. 예전엔 친구 담벼락에다 글도 남기고, 안부도 묻고 했는데 이제는 그러기엔 조금 민망하다. 아니 그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물론 개인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전체가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무언가에 질려할 때쯤 이미 트렌드는 다른데 가 있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이제 더 이상 페이스북을 보며 트렌드를 찾지는 않는다. 내가 기획일을 하기 때문에 유난히 더 그럴 수도 있지만, 페이스북은 각종 '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전히 재밌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고가 열리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진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보이질 않는다. 예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내가 그렇다. 페이스북엔 더 이상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아니 줄였다. 페이스북은 일기를 쓰는 곳이 아니라 이제는 전문 지식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 된 듯한 느낌이다.
9.
나에게선 인스타그램의 비중이 현저히 높아졌다. 인스타그램에서 훨씬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보이고, 소위 말하는 '힙'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훨씬 많다. 게다 해시태그로 전 세계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물론 그 세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네이버보다는 검색 결과가 훨씬 더 만족스럽다.
10.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이라면, 텍스트는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다.
그전에 블로그도 해봤지만, 블로그는 무언가 일반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게 네이버 블로그이지 않나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브런치는 글 쓰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물론, 검색 노출에 있어서는 네이버보다는 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에는 글을 읽을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로 글 쓸 때는 나도 더 신경 쓰게 되고, 글 연습하기에도 좋다.
예전엔 뻘글(!)도 페북에서 자주 썼었는데 이젠 그러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점점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
11.
그리고 점점 브런치에 뭐라도 쓰려고 하는 것 같다. 인스타에도 마찬가지로 뭐라도 올려보려 하는 것 같다. 워낙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일기도 가끔 쓰기도 하지만, 간편하게 남기기엔 SNS 만한 것도 없으니깐. 사진도 제때제때 함께 남길 수도 있고.
12.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은 페북은 점점 재미 없어진다는 거고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 생각, 감정을 토해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브런치는 브랜드나 영화 관련 이야기로 개인적인 생각들을 써볼까 했는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기록하는 공간도 필요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는 이제 이런 글 쓰기엔 조금 어울리지 않게 되었으니깐.
13.
다음엔 어떤 플랫폼이 나올까. 한동안은 유튜브와 인스타가 대세일 듯 하지만, 나는 그림이나 영상보다도 글이 젤 좋다. 브런치가 여전히 베타 버전인 게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나는 브런치를 쓰지 않을까. 물론 페북을 대신하는 건 아니고. 페북은 페북대로, 브런치는 브런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