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vie Sav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abba Nov 27. 2018

이따금, 밀려오는 기억들

내가 좋아했던 90년대 로맨스 영화 6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보고 들을 수 있는 밀레니엄 시대. 사람은 간사하게도 쉽고 빠른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때가 좋았지' 라며 과거를 그리워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서 느리게 가는 것을 그리워, 빠른 것을 찾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느긋한 여유를 찾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혹은 사람).


영화도 마찬가지다. 초초대형 스케일에, 3D를 넘어 4Dx로 온몸을 휘감는 사운드와 감각들로 영화를 '체험'하며 더 많은 감각을 원하면서도 왜인지 잡음 많고 화질 낮은 영화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시원한 커피 한잔 보다, 따스한 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라 그럴까. 담백하게,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가 문득 생각나는 요즈음. 지금은 쉽게 볼 수 없고, 만들 수도 없는 90년대 감성이 가득 담긴 로맨스 영화를 골라봤다.


Edited by Movie Saver.

#90년대 #감성영화 #로맨스영화 #겨울영화 #영화추천 #영화 #무비세이버 #moviesaver




1. 접속 (The Contact, 1997)

언젠가 만날 것 같은 사랑
97년 새로운 감수성의 러브스토리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굉장한 아날로그 로맨스지만, 당시에는 센세이션 했던 영화였다. 'PC통신'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녀가 사랑을 할 수 있다니!

(지금도 그렇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세기말적' 사랑이었고, 젊은 세대에게는 '신식' 러브스토리에 환호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채로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통신'을 통해 서로에게 빠져들어가는 두 남녀. 영화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칠 때마다 관객들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결국 만난 두 남녀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영화가 끝이 나면 관객들은 기도하듯 두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음악, 'A Lover's Concerto'는 이 감동을 몇배로 더 끌어오르게 하였다.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영화는 정말 드물 것이다. 남녀 배우의 그 흔한 포옹씬도 없이 끝나는 영화지만, 그 어떤 로맨스보다도 심쿵하게 만드는 로맨스 중의 로맨스. 모든 것에 쉽게 '접속'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90년대 '사이버 러브'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올 듯 하다.

지금은 대배우라 불리는 90년대 로맨스 장인 한석규와 신인(??) 배우 전도연의 조합 역시, 당시만큼이나 새로움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2.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


90년대 로맨스 장인, 한석규의 또 다른 로맨스 영화 - '8월의 크리스마스'

위에서 소개한 '접속'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이다. 한석규는 물론이고 지금은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심은하'가 주연인 영화라 더욱 그리운 영화.


이 영화 역시 참 별거 없는 영화다. 사진관을 운영하며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노총각 '정원'과 주차 단속요원인 '다림'의 일상이 전부다. 심지어 영화에서 두 사람의 직접적인 로맨스는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감정을 관객들은 충분히 느끼고 공감하고, 함께 안타까워한다.


보잘것없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욱 내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영화. 8월의 한 여름이 배경이지만 제목처럼, 겨울에 더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크리스마스' 같은 애잔함이 담긴 영화니깐.


영화 속 배경인 '초원 사진관'은 군산에 있는 사진관으로 영화 속 장면 그대로 남아 있다. 군산에 간다면 들러서 한석규, 심은하처럼 추억이 될 사진 하나 남겨보자.



3. 약속 (A Promise, 1998)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그녀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


조폭과 여의사의 러브 스토리는 지금은 굉장히 뻔한 스토리일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야기라면 꽤나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약속'은 내가 기억하는 한, 조폭 남자와 스마트한 여성의 직업의 벽을 허문 최초의 영화였을 것이다. 그만큼 캐릭터도 충격적이었고 그 둘이 줄타기하는 장면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으른들의 사랑인가!' 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썸 타기'에 화면 속으로 푹 빠져서 정말 재미있게 봤다. 90년대 영화 중에서는 가장 많이 본, 그만큼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 중 하나. 박신양, 전도연 그리고 정진영 까지 배우들의 조합도 너무 좋았다.


'희주'에게 피해가 갈까봐, 일부러 센척하며 '한두 번 놀아준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집착하냐'며 소리치는 '상두'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그런 게 아니예요 희주언니!! 라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소리쳤는지.


상두가 희주를 떠나기 전, 모든 것을 잊은 채 함께 하는 하루는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 결국 그 둘이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아무일 없다는 듯 행복하게 보내는 둘의 모습에 가슴 아팠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약속'을 하는 둘.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끝도 없이 울었던 것 같다. 둘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지금은 너무나 흔한 소재에다 뻔한 결말이지만, 지금 다시 봐도 웃고 울며 처음 본 것처럼 깊이 빠져서 볼 것 같다.



4.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당신, 잘 지내고 있나요?


이 영화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말해 뭐하나. 90년대 로맨스 영화에서 이 영화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겨울이 되면, 더더욱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하고.


일본 영화/음악에 대한 제재로 한국에서는 뒤늦게 정식 개봉했지만 그럼에도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유명한 대사 "오겡끼데스까(잘 지내고 있나요?)"는 일본어 모르는 사람도 이 문장은 알게 될 정도였다.


'일본 영화' '일본 감성영화'라고 한다면 '러브레터'라고 할 정도로, 일본 감성영화의 대표작이자 기준이 된 영화. 그만큼 일본 특유의 '잔잔하고 담백한' 감성을 잘 담아내기도 했고, '일본 필터'라고도 할 수 있는 특유의 색감이 빛을 발한 영화이기도 하다.


감성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굉장히 새로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낯설면서도 처음 보는 편집 기술에 박수를 보냈고, 그 기술에 담긴 로맨스에 '심멎'하게 만들었다.


유행어로만 알고 있던 '오겡끼데스까'가 나올 때, 그 감동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모든 감정선이 폭발하는 이 장면에선 모두가 흐느끼며, 잘 지내고 있다고 내가 대답해주고 싶었을 정도였다.


첫 개봉 이후 서너 차례나 재개봉에 재재개봉을 하며, 여전한 '일본 영화'의 파워를 입증한 영화. 이 영화 이후로 '이와이 슌지'는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르며 이후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등 일본 로맨스 영화를 이어왔다. 이와이 슌지 영화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일본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재개봉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찾아보지 않을까. 생각난 김에 나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 추운 겨울엔 역시, '러브레터'가 제격이다.



5. 동감 (Ditto, 2000)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사랑을 꿈꾼다


요즈음 '타임슬립(미래와 과거를 넘나 든다는 뜻)'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90년대라면?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첫 번째로 소개한 '접속'은 PC통신으로 공간을 뛰어넘은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동감은 '시간'을 뛰어넘는 로맨스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무전기'를 통해 두 남녀가 알게 되고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둘은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21년을 뛰어넘은,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다는 것. 서로의 세상에 대해 '교신' 하며, 그 둘은 모든 것을 공유 하지만 '시간'만큼은 함께 할 수 없다.


'판타지 로맨스'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 '동감'은 보고 나면 참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가 아닌 미래와 과거를 바라보며, 현재보다도 더 많은 '동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판타지 요소가 담긴 로맨스라 그런지 배우들도 더욱 신비하게 다가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유지태'였다.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해서,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반항아로 매력을 한껏 뽐내더니 이 영화에서는 로맨스 프린스(!)로 열연한 배우.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의 캐릭터도 좋았지만, 판타지 로맨스에서 판타지 같은 비주얼(!)로 감미로운 목소리로 무전기로 이야기하는 그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심가득)


수많은 타임리프 영화들과 소설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만들어낸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다시 개봉해도 좋을 것 같은 영화. 밀레니얼에게도 큰 '동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6. 시월애 (時越愛, A Love Story, 2000)


이 사랑이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또 다른 시공간을 다룬, 90-00년대 대표 영화 '시월애'.


'편지'라는 소재 자체가 벌써 아날로그 감성이 흘러 넘친다. 전화나 PC통신, 하다못해 무전기도 있는데 편지라니. 손글씨라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두 사람의 시간차는 겨우 '2년'이지만, 그 둘에게는 20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시간 차에 (심지어 서로 스쳐 지나가는데도) 오히려 더 큰 상실감을 안겨준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배우 '전지현'이다. 그녀는 당시 '엽기적인 그녀'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여전히 그녀의 최고작으로 '엽기적인 그녀'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는 그녀의 최고작으로 '시월애'를 꼽고 싶다. 그녀가 '로코'에만 강한 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의 매력을 보여줬던 영화. 다만 이 영화가 개봉 당시에는 큰 히트를 하지 못해 그녀의 진짜 매력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해 아쉬울 뿐.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이정재 또한, 그녀의 최고의 파트너 배우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가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면, 전지현이란 배우에 대한 평가도 일찌감치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찾게 되는 영화 바로 '시월애'다.





과거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것은 고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감성들은 오히려 '초연결' 사회에서 과거의 시간들이 따듯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시간에 쫓겨 앞만 보고 달려오기 바빴던 우리의 일 년. 남은 한달이라도 느슨한 시간을 느껴보길 바라며, 단 두어시간만이라도 90년대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지내온, 원래의 속도 속으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언가 답답한 날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