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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Feb 25. 2019

여의나루 역에 버렸습니다

"어, 토끼가 있네."


한 손에는 겉옷을 다른 손에는 커피 한잔씩을 들고 걸어오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정말이네" 라며 그 자리에 섰다. 그들의 명치 언저리에 흔들리던 사원증도 잠시 진동을 멈췄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토끼. 아이보리색 토끼 한 마리가 폭신한 우레탄 길 위에 정말,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 벤치에 앉았다. 쓸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 빈손이 싫어 들고 나온 노트북 가방이 옆자리에 따라 앉았다. 거의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때라, 토끼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내 가던 길을 잰걸음으로 이어갔다.


토끼는 가만히 있었다. 토끼가 움직이면 일어나야지 싶었는데, 꽤 오랫동안 우레탄 바닥에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엉덩이가 좀 시릴 텐데, 아니다. 내 엉덩이가 차가웠다. 4월이 중반을 넘어섰는데 한낮이라도 그늘진 쪽은 아직 조금 춥다. 그러고 보니 여의도의 숲이 꽤 깊고 컸구나. 숲 너머의 건물 머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왕 걷기 시작한 거, 한강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서는데 토끼가 먼저 움직였다. 토끼는 강의 반대편으로, 안단테의 깡총 깡총으로 사라졌다.  


*  *  *  *  *  *


"그러고 보니 자기랑 여기는 첨이네, 진짜 괜찮아. 점심특선은 여의도에서 제일 난 것 같애. 그죠, 사장님? "


애피타이저용 야채 튀김과 간장을 내려놓던 중년 남자의 소매 깃을 살짝 잡으며 L이 웃었다.

여덟 살 아래인 나보다도 얼핏 서너 살 더 어려 보이는 그는 사실 라디오국에서는 이미 연차가 꽤 되는 중견 피디다. 클래식 전공, 대학 조기졸업, 최연소 입사, 퇴근 후 공부로 한 번에 CPA 합격, 띠동갑 연하남과의 결혼까지. 우연히 듣게 된 남다른 성취와 선택들로도 설명될 수 있겠지만, L은 말과 걸음이 빠르고 눈을 맞추며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여자다.  


"오는 길에 보니까, 이젠 벚꽃이 거의 안 남았더라고"


트렌치코트를 벗은 J가 코를 찡긋했다. 중성적인 저음의 보이스는 방송 때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더 듣기 좋다. 원고를 보거나 경청할 때 5도쯤 기울어지는 턱, 습관적으로 짓는 희미한 미소와 어울리는 목소리다. 나는 언제나 강박적으로 디제이를 사랑했다. 이제는 일부러 그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자 J가 조금 더 애틋해졌다.


L의 말대로 12시가 되기 전에 식당은 예약 손님으로 꽉 찼다. 그중에는 라디오국 국장님 일행도 있었다. 복도에서 눈인사하는 정도였는데 일부러 테이블까지 와서 콜라 건배를 청했다. 그는 건배를 위해 L에게 귓속말로 내 이름을 물었다.


"정말 역까지 차 안 타고 갈 거야? 그래요 그럼. 이제 진짜 안녕이네. 아냐, 담에 또 봐. 참, 출입증 반납하러 일부러 올 필요는 없어요. 금방 또 볼 텐데 뭐. 잘 가지고 있어요. 연락할게"


*  *  *  *  *  *


왜인지 여의도는 강남역 앞만큼이나 편안해지지 않는 곳이다. 내 인생 첫 번째 남자 친구와 칼바람을 맞으며 첫 데이트를 했고, 대학 때부터 이런저런 일로 들락거렸으니 십 년이 훌쩍 넘게 다니던 동네다. 그런데도 다니는 코스 외에는 헷갈려서 번번이 길을 잃는다.


그래도 초여름까지 오래된 아파트 사이 뒷길을 천천히 걷는 건 좋다. 아니 가을날 낙엽이 펄럭이며 떨어지는 풍경도 나쁘지 않다. 광장 아파트 사잇길은, 한 블록만 넘어가면 고층 빌딩들이 내려다보고 경기도 외곽까지 떠나는 대형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즈넉하다. 여름밤에 아파트 단지 안의 치킨집에서 첫 모니터를 했던 기억. 자정이 넘은 시간, 택시를 잡으려고 서아파트 외벽에 새겨진 '목화'라는 동글동글한 두 글자를 볼 때면 이상하게도 집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마천루 사이를 내달려온 날카로운 공기도, 고목에서 새로 난 여린 이파리를 스치며 느긋해진 바람도 모두 여의도의 촉감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한강.

아무도 없는데서 실컷 울어야지 했는데, 이미 잔디밭에 사람이 많았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짧은 바지를 입고 뛰어가는 서너 명의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도 보였다. 지난 주말 벚꽃축제로 생긴 쓰레기산을 치우는 건지 '공원녹지과'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일군의 사람들이 우르르 청소용 차량 쪽으로 걸어가는데 맨 뒤에 섰던 사람이 휴대폰을 받더니,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누군가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활기찬 소란 속에서 누구 하나 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셈이었지만, 이미 엄마를 따라 나와서 뭔가 심통이 난 대여섯 살의 아이가 자신의 온몸을 울려가며 최선의 데시벨로 서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  *  *  *  *  *


짝사랑은 취향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안다. 노력해볼 수는 있지 않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희박한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다. 한데 일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연애라고 부를 수 없는 긴 짝사랑이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나를 지워갔다. 성격과 감성, 취향까지도 프로그램에 맞췄다.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늘 있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이유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나였다. 잘하고 싶었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노력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거나 판단의 전제가 틀렸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외면하고 싶었을 뿐... 소진돼버렸다는 것을 더 이상 숨기기도 힘들었다. 엔딩은 피할 수 없었다.


"할 만큼 했어."


인정하고 나니 후련했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콧물만 나왔다.


*  *  *  *  *  *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어디까지 달려갔는지 반환점을 돌아, 다시 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돌아갈 타이밍이었다.


교통카드를 꺼내려고 노트북 가방 안쪽을 휘젓는데 집에 두고 온 줄 알았던 방송국 출입증이 따라 나왔다. 지금은 여의도를 떠난 어떤 방송사의 출입증을 처음 받던 날 기억까지 딸려 나와서 넌 낄 데가 아니라고 다시 가방에 쑤셔 넣었다. 


여의나루 역 3번 출구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길고 깊었다. 한 손은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를 꽉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두장의 카드를 쥐고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처음 발견한 쓰레기통에 방송국 출입증을 버렸다. 손바닥엔 교통카드만 남았다.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L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뒤늦게 합류한 J와 함께 떡볶이로 유명한 가게에 줄을 서서 자리를 옮겨 맥주를 한잔씩 하고 헤어졌다. 얼마 뒤 방송국은 파업을 시작했다. J는 새 노조의 얼굴로 한동안 인터넷 뉴스를 진행했다. 나는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먼 도시로 이사를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yAAZrmUpI

봄날, 버스 안에서(feat. 유정균 Of Sereng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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