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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Dec 14. 2020

그는 이제 찌질하지 않다

남동생이 귤을 보내왔다



20대 시절, 남동생은 사귀었던 거의? 모든 여자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아무렇게나 차린 저녁 식탁에 불쑥 여자 친구를 앉혀 놓기도 하고, 주말에 파자마를 입은 채 굴러다니던 와중에 동생의 여자 친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30대가 된 이후로는 난감한 상황이 사라졌지만, 부모님은 밖에서 남동생의 여자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을 끝으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가족은 그의 여자 친구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물론 짐작건대 그 후에도 몇 번의 연애를 했고, 어느 날 밤엔가는 잠결에 먼 동생 방에서 술 취한 남자가 소리 죽여 우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책장의 제일 아랫칸, 나이키 운동화 박스에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물건들을 보관해두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결혼하겠다고 소개 한 남동생의 그녀를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놀랐다.  지난 여자 친구들의 외모를 알고 있던 터라, 비슷한 스타일을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조금 해보고 안심했다. 자그마하고 앳된 얼굴과는 달리 개성과 고집이 보통이 아닌듯했다. 그럼 그렇지. 


동생 부부는 일가친척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 잘 살고 있다. 주말이면 깊은 바닷속을 헤집고 다닌다고 한다.  얼굴도 손도 몸도 작은 여자는 체력이 좋아 남동생과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내에게 상냥하고 자상한 것에, 엄마 아빠는 요즘도 마냥 신기해한다. 남동생 부부는 겨울이면 싱그러운 귤을 따서 부모님과 우리에게 보내준다. 


남자가 원래 좀 찌찔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재빨리 눈치챘다. 젊은 날의 아빠가 엄마에게 그랬고.  2,30대 시절의 남동생도 비슷했다. 마흔이 넘어 결혼한 동생이 적어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조금 나은 남자가 될 수 있는 이유...


... 당신의 남자가 찌질하다면, 지금 당신과 사랑을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남자가 더 이상 찌질하지 않다면... 그건 누군가에게 이미 아프게 사랑을 배웠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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