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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Feb 27. 2019

하노이까지 느리고 멋있게 왔다

이탈리아 횡단밴드 (Basilicata Coast To Coast)


오늘은 결전의 날,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난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하노이 회동에 관한 소란한 리포팅보다 내 눈길을 끄는 건

언제나 유니크한 두 정상의 헤어스타일이었다.


보라! 저 흐트러짐 없는 앞머리를


"저 머리 하는데, 아마 한 시간 이상은 걸릴 거야"


트럼프의 헤어스타일에 관해 우리 부부는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박근혜 올림머리 미용사처럼 전용 미용사가 나타나 스프레이 같은 헤어제품을 사용할 거라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멈췄지만, 나는 전체적으로 뒤에서 옮겨온 긴 머리를 한번 접어서 다시 뒤편으로 넘겨 부피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모양을 저렇게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중간에 책받침 같은 고정장치가 필요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근거는 무엇보다 지난 방한 때 캠프 험프리에 도착한 군용기에서 내리던 트럼프의 머리가 강력한 헬리콥터 바람에도 끄떡없었기 때문이다.


"정교한 가발이 아닐까?"


초기에는 미용사를 통해 매일 창조해내던 스타일을 좀 더 편하게 구현하기 위해, 이후 가발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똑딱단추 같은 것을 이용해 붙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우리 부부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래, 가발이 아니라면 좀 그렇겠다"


만약 뒷머리를 앞으로 모아 접은 후 다시 뒤편으로 넘겨서 부피를 만들 정도의 머리라면? 그 길이가 상당할 것이다. 풀었을 때... 모양이 흉할 것이다. 원피스형 잠옷을 입고, 금발머리를 풀어헤친 190센티 거구의 트럼프의 모습까지 상상하자 씹던 귤즙이 기도로 넘어갔다.




자주 발그랗게 상기되는 볼,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스타일인것 같아. 요즘 더 쪄보....



트럼프에 비하면, 김 위원장은 담백한 편이다. 사과 필러로 돌려 깎기 하듯 속살을 많이 드러낸 머리통.


"다 필요 없다, 할아버지 스타일로!"


이런 결단. 그래도 엊그제 기차에 올라타 인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 때는 올려붙였던 앞머리가 이마에 흘러 내려왔다. 부드럽게 웨이브 져서 흐트러진 모습이 좀 귀여웠다. 김 위원장은 피부가 약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혈압 때문인지, 긴장해서인지 모르지만 종종 얼굴에 홍조를 띠는데 발그래진 얼굴로 서 있으면...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앞집 초딩 5학년, <줄넘기 교실>가는 친구 같다. (운동만으론 안돼, 먹는걸 줄여야지...쿨럭쿨럭)



*    *    *    *



귀엽고 한가로운 상상에 신선한 충격을 준 뉴스가 이어졌으니,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기차로 이동한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기차로 끝까지 간다고? 왜? 비행기가 없나? 아마 우리 정부에 살짝 부탁했으면 들어줬을 텐데? 아니 중국에서 타고 내려가겠지." 땡! 탈락! 틀렸다. 기차로 간다. 비행기로는 3시간이면 충분할 약 4500 킬로미터의 기차여행.


*    *    *    *



그때 떠오른 영화가 바로 <이탈리아 횡단밴드 (Basilicata Coast To Coast)> 다.

한때 음악 좀 했던, 지금은 중년을 훌쩍 넘어선 네 명의 남자가 차로 2시간이면 도착하는 도시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열흘 동안 당나귀를 타고, 걸어서 간다는 애기다.





발상부터가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의 느린 여행의 이유는, 그들에게 낭비할 시간이 많기 때문.

인생은 짧고 낭비할 시간은 많다!


각자 다른 종류의 현실과 고민을 가지고 있던 중년 남자들이 오로지 음악과 친구에 의지해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정이다. 미모의 여기자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차로 갔다면 거치지 않았을 산 중턱의 작은 마을.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보내는 밤에 일어나는 사건들. 우리에겐 조금 낯선 이탈리아 남부지방 특유의 척박한 자연과 낙천적인 사람들 모습이 보는 내내 흐뭇다. 짠한 영화의 엔딩까지도.



*    *    *    *



김정은의 기차 여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향해) 멋진 훅이었다. 무엇보다 비까 번쩍한 전용기를 타고 최단거리로 날아다니며, 트위터를 통한 요란한 언사로 상대를 당황시키기 일수인  트럼프에게, 힘을 과시하는 창의적이고 묵직한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통쾌하다.  


"나는 너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3일에 걸쳐 힘들게 간다. 나는 너를 포함한 서방 세계가 무시하는 작고 가난한 나라의 위험하고 어린 왕이지만, 내 나라와 대륙으로 이어진 주변 국가들은 무릎을 꿇고 내 앞길에 붉은 주단을 깔아 놓을 것이다. "



암튼 둘이 만나서 잘 되기를 빈다.

김정은의 선빵이 트럼프 입장에선 좀 약이 오르겠지만(그리 깊이 있는 찬사 따윈 원래 관심없는 인간인데다 국내문제로 정신 없겠지만), 서로 계산기를 잘 두드려서 악수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 바란다.


역사는 길고, 협상은 강자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cSn235gQx0

한민족의 재능과 열정은 이미 세계 (음악)시장을 씹어먹을 준비 끝. BTS 다음타자는 여왕님 예상해봅니다




화사 - Tw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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