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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Oct 06. 2020

나이 든 남자의 멋

테스 형과 요트

추석을 지나 요 며칠 핫했던 두 가지!

KBS에서 방영했던 나모 가수의 공연과 대한민국 외교부 수장의 남편께서 해외 출국하셨다는 뉴스.

별 연관성 없어 보이기까지 한 이 두 가지 사건을 지나며...

사실은 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남자들의 반응이 더 신기하고 재밌었다.


저, 나모 가수의 공연

평소 듣던 장르의 음악도 아닌데, 남편이 웬일로 티브이 시간까지 맞춰 보고 싶어 했다. 모 재벌의 청도 거절했다는 일화와 더불어 명성이 자자한 비싼 콘서트라, 그 실체가 궁금하다는 것. 눈꺼풀이 반쯤 감기는 시부모님까지 억지로 앉혀서 함께 봤다.


한가위 대기획 씩이나... 난 잘 몰겠다


기대가 컸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끝까지 취향의 접점을 찾지 못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

몇 개의 신곡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에 그저 그런 가사, 자기 복제. 예를 들어 어떤 곡은 자신의 노래 <홍시>의 초반 멜로디 라인과 거의 똑같이 들렸고, 또 다른 곡에선 거의 자세가 무너진 채 반쯤 눈을 감고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도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멜로디인데? 백만 송이 장미랑 비슷하지 않니?"라고 물어보셨다.


특히 그 유명한 "테스 형~"이 나올 때쯤엔 폭소가 터지고 말았는데, 소크라테스... 아니 철학자들을 돌려 까기 한 것인가? 알쏭달쏭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우리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 피었다." 다음 날 친정아버지가 "테스 형"의 가사를 이미 숙지하고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뿔사, 이게 먹히다니....' 싶어, 나훈아 세대의 감수성과 지성? 에 대해 더욱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 그 말... 테스 형이 그냥 툭 뱉은 말은 아니었는데.


삼각근과 상완근 인정합니다.


테스 형을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 만큼이나 당당한 부산 사투리는 신선했다. 초량동 사람이라 밝힌 자기 지역색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러닝셔츠 패션을 소화하기 위해 삼두근과 상완근에 들인 노력에 대해서도 인정. 다만 거기까지.


KBS를 향한 충고를 포함한 야릇한 국뽕 멘트들은, 딸뻘의 여자 무용수들과의 애매한 러브씬 퍼포먼스처럼...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나 아직 남자야"를 아무리 자랑하고 싶어도 꼭 벗어재껴야 맛은 아닌 거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멋진 말"들이, 다음날 어김없이 말 퍼뜨리기 좋아하는 이들의 먹거리가 될 것을 짐작 못했다면 그것도 철없음이고, 그걸 노렸다면 더 유치하다.

  

힘을 빼야 멋있지 않나. 소박한 고향의 이야기, 천진난만한 인생의 실패담만이 노년의 품위를 높여준다. 하지만 울 친정아부지를 보니, 아마도...  "어흥, 나 아직 안 죽었어"에 더 꽂힌 모양새.  


  

나이 든 남자의 Flax


대한민국 외교부 수장의 부근께서도 어쩌면 같은 선상에서, 출국하셨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 아직 안 죽었어"- 은퇴한 교수님의 버킷리스트 <요트 여행>.  어떤 언론에서는 고가의 요트가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는 모양인데. 사실 요트를 사건, 비행기를 사건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닐 것이고,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자체가 뉴스도 안될 일이다.


다만 전 세계가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고, 국내 여행이나 친족방문까지도 삼가 달라는 총리의 당부가 있은지 얼마나 되었나. 외교부 수장의 가족이 개인 여행으로 출국하는 데는 당연히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런 기자의 질문에 "와이낫?" 쏘쿨하게  해외로 나가신 이 남자분에 대해 생각한다.


열광적인 공유 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즐거움을 뒤로 미룬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의무감으로부터 훨훨 자유롭지 못한 인생에 안타까움.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페이스북의 남성 동지들의 게시판엔  <공직자의 가족이라도 '행복해질 권리'는 있다>는 글이 가장 많이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누가 뭐래?  다만 배우자 입장을 곤란하게 하면서 누리는 나의 <플랙스>가 얼마나 즐겁고 멋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거지. 아예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몇 개월 미룰 수 도 있었을 한 남자의 마음의 여유, 아내를 향한 배려심에 대한 얘기.


평생을 기다려 자기 무대를 찾아낸 대한민국 0.1% 엘리트 아내가 그 기량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모습은 애써 안 보고 싶은 남자.  본인 때문에 구설에 오르고 고개 숙일 일이 생기는 것에  한 톨 연민도 안주는 옹졸함. 어쩌면... 코로나로 온 세계가 움츠러들던 이런 시기에도 그 남자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 가슴으로 맞으며 마도로스 흉내를 내었노라 자신의 블로그에 자랑하겠지만, 나는 그 남자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속 좁은 영감으로 기억할 것이다. 카트를 끌고 가는 그의 조그만 분홍색 어깨 위에 쉰내나는 자기 연민이 앉아있다.





   


하여, 나이 든 남자의 멋이란 뭘까.   

... 그런 생각을 하니, 일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어떤 방송 작가님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노동일로 힘겹게 사셨던 분이 웬일인지, 길가 어귀에서 대문 앞으로 들어오는 길에 늘  꽃을 정성스럽게 가꾸셨다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밥상에 올릴 푸성귀가 아닌... 그저 한철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을 시간을 내서 곱게 가꾸셨다는 글을 쓰셨다.


농사일로 손에 못이 박힌, 늘 별 말도 없는 무뚝뚝한 한 남자. 힘든 밭일을 끝내고 돌아온 어느 저녁에... 농기구를 옮겨다 놓고는 다시 옷을 툭툭털고 동그랗게 쪼그리고 앉아 꽃을 심는다. 아내는 "힘든데 이제 좀 쉬라"고 하겠지만, 그는 그저 묵묵히 몇 개의 꽃모종을 내려놓고... 흙을 파내 꾹꾹 눌러 심었으리라. 어린 딸아이가 막 심은 자리에 물동이를 부으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겠지.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멋진 말로 설교하지 않는 그의 낭만과 여유. 가난과 배고픔의 절박함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존재의 품위. 그 남자가 품었던  바다를 생각하면 꽃내음의 파도가 일렁인다.  


러닝셔츠에 어울릴 삼두근을 만들지 않아도, 소크라테스 형까지 불러내며 잰체하지 않아도, 싼 요트를 사러 종종거리며 장거리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나이 든 남자가 멋있을 수 있다. 인생을 좀 산 사람의 멋이... 20대의 그것처럼 보여주고 떠들어대야한다면 너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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