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헛것을 본 적이 많다. 열이 올라 앓던 날이 많아서다. 끙끙 앓으며 혼자 방에 누워있으면 자주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덮쳐오는 것 같아... 눈을 감지도 뜨지도 못했다.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귀신을 무서워했다. 나이를 한참 먹고 나서도 혼자 독립해 살지 못한 이유가 무서워서다. 사람 말고 귀신 무서워서.
요 며칠 집에 혼자 있으며... 불 꺼진 방에 누워, 귀신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이가 귀신이라면... 내 사랑하는 이들 중에도 있다. 그리운 외할머니. 다시 만난다면 손 꼭 잡고 놓지 않을 테다. 반짝이는 하얀 머리카락 쓸어만지고 볼을 비빌 테다. 방귀 냄새라도 반갑겠다. 귀신이면 어떤가.
...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데이트 장면에서, 다림이가 정원의 팔짱을 끼게 만든 얘기. 방귀 냄새 피운 귀신 얘기.
그냥 귀여운 에피소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죽은 이에 대한,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 사라져 버린 이들을 향한 감독의 마음인 걸 곱씹는다.
... 한밤중, 불 꺼진 식탁에 앉아 물을 따르다가 뒤늦게 정원의 심정을 생각한다. 그 시작 부분, 운동장 씬이 이제야목울대를 꼭꼭꼭 찌른다.
"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