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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Oct 23. 2020

한 그릇 배달은 절대로 안돼

배달노동자, 택배노동자를 생각하다

어릴 적 아빠에게 엄청 혼난 적이 있다. 아직도 생생하다. 심지어 짜파게티를 끓일 때도 생각다.


국민학교 5학년.

점심도 못 먹은 차에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때우려고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배달 아저씨 뒤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좀 일찍 퇴근하신 모양이다. 나는 뭐... 달 큰 짭조름한 냄새가 더 반갑기도 하고, 쫄쫄 굶은 것이 억울한 마음도 있어서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자장면을 받아 쪼르르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이구 사장님, 이거 미안합니데이.. 바쁜 시간인데, 아가 아직 뭘 몰라가지고... "  

현관에서 자장면 값을 건네 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는 구겨진 야구 모자를 고쳐 쓰  "아, 뭐. 다들 시켜 드시죠. 허허"  하시고는 얼른 나가셨다.


아저씨의 낡은 오토바이가 부릉 시동을 걸기도 전... 내가 막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가르려고 들었을 때. 아버지가 소파 위에 가방을 탁 내려놓고, 나지막이 나를 부르셨다.

"니 일로 좀 와, 앉아바라"  


....? 배고파 짜증이 날 지경이라 고개는 돌아갔지만 눈은 자장면을 향해 있던 찰나. 이상한 공기에 멈칫했다. 양복 겉옷을 벗은 아버지가 와이셔츠 소매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화나셨다는 얘기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더 크게 투덜거리면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 왜~  나, 배고프다고~~"


"니는... 마. 인간이, 인간이 돼야지. 배때지 고프다꼬 지 입에 밥 쳐 넣는 거 빼이 모르면, 그기는 인간이 아니라..."  


쫌스런 양반. 아까 들어오실 때 인사를 안 했다고 화나셨구먼. 인사는 기본이다, 못 박히도록 듣던 말. 그래도 인간 분류에서 제외되긴 억울하다. 나도 할 말은 있다. "점심도 못 먹었는데... " 입안의 말을 뭉개고 있 들어온 아버지의 훅 한방!  


"마! 장 한 그릇을 배달시키는 기! 그기 인간이가? "


자장면 한 그릇 시켰다고 화내시는 거야, 지금? ... 자기 거 안 시키고 내 거 한 그릇만 시켰다고? 눈을 획 치켜뜨고 째려봤다. 라면 끓일 때 안 먹는다고 했다가 꼭 "한입만~"하고 달려드는 염치없는 그다. 한밤중 울고불고 짜증 낸 게 엇그제였다.


"아빠, 한 그릇 시켰다고 그러는 거야? "


너무했다. 한 사람이 한 그릇을 시켜야지, 두 그릇을 시키나? 누가 언제 올 줄 알고?


"니는 임! 짜장 한 그릇은 가서 사 먹는 게 그기 인간이다. 지금 장사하는 사람은 한창 바쁜데, 니 때매 사장님은 배달할라꼬 여까지 저거 한 개 들고 왔다 갔다 하모 되겠나? 그기 니는 생각이 안돼? "


생각이 안돼요. 중국집 사장님의 저녁 장사까지 고려하기에 굶주린 5학년은 아직 무리.


그래서, 울었다. 마침 엄마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다. 엄마의 동공이 커지는 걸 확인하고, 벌떡 일어나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방으로 가서 문을 쾅 닫았다. 문을 잠그고 이불을 썼다. "아... 씨. 지난 주말에 다 시켜먹어 놓고. 나는 혼자 짜장면도 못 시켜먹게 하고... 자기들은 밖에서 맛있는 것도 다 사 먹고 다니면서. 나는 밥도 안차려 주고. 으아아아앙"


엄마가 내 방문을 몇 번을 두들겼고. 아빠와 조근조근 다투다가 "아휴, 그래 다 내 이다. 돈 몇 푼 벌라꼬 아들 밥도 못 챙기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다, 내 잘못이야" 라며 한숨을 푹 내쉬는 것도 다 들었다. 새벽에 배고파서 나왔다가 딱딱하게 굳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자장면도 들춰 봤다.



그날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독립한 후에집으로 음식을 시켜먹지 않는다.



*     *     *     *



예전 신당동에 TBN방송국 있던 시절에, 처음 일하게 된 피디와 인사 겸 식사를 하러 간 저녁. 바로 창문 밖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목격했다.  사고를 바로 앞에서 본 건 처음이라 먹는 둥 마는 둥 심란하게 집에 돌아오면서... "사고를 막으려면 교통방송이 중요하긴 하겠구나. 열심히 해야겠다." 나 편한 다짐했던 적이 있다. 치킨인지 피자인지 회사에서 <신속 배달, 몇 분 안에 배달> 같은 거로 마케팅을 벌였는데, 빨리 배달하려다 아까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많았다. 다행히 '신속 배달' 그런 거로 마케팅하지 말자, 는 캠페인이 있었고 조금은 정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전하다.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그놈의 총알배송, 새벽 배송.


가끔 집 현관문 번호를 누르다가, 옆집 문 앞에 20킬로짜리 쌀이 두어 개 놓여있거나, 2리터짜리 생수 몇 묶음이 올려져 있는 걸 보면서 "어르신들이 집에만 계시는구나. 그래도 배달이 돼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아이고, 저 무거운 거 어찌 다 들고 날랐을까..." 생각하는 건, 아마 나만은 아닐 거다.


코로나 시대에,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었을지 모른다. 유럽 마트에서 물 사재기, 휴지 사재기한다고 속으로 욕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했을 뿐이다. 그들에겐  우리처럼 빠르고 싸고 편한 택배가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새벽에 들어가, 잠도 못 자고 옷만 갈아입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눈을 비볐다. 노동자는 노동을 팔았을 뿐, 인격을 판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판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잠도 못 자 일을 했다니...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댈 테지만... 누가 잠도 자지 않고 일하고 싶을까, 구조적으로 그렇게 짜 놓았을 것이다. 19세기 어린이를 착취하던 산업혁명시대도 아니고 1970년대 전태일이 분신해야만 했던 여공 착취 시대도 아니건만. 무엇이 다르지? 사람을 죽이는 노동. 그거 하지 말자고 고용노동부도 있고 노동법도 있는 거 아니었나. 택배비가 너무 헐한 것이 문제라면 가격을 올리고 사람을 더 고용하면 되지 않을까. 세상에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값으로 쇼핑을 하고 싶을까.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싶으면, 중국집에 가서 먹으라던 아버지. 그게 인간의 도리라고 혼내셨던 아버지. "나 조금 편하자고 다른 사람의 수고를 함부로 리면 안 된다" 던 아버지의 인간론이 문득 떠오른 아침이다.  (배고픈 어린이 입장을 고려해 좀 쉽게 차근차근 알려주셨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그 교훈만큼은  30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여전해야 하는  아닐까.





 


 

한그릇만 시키는 건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어. 근데 최근에 혼자 계실 때 집에 가봤더니 시켜먹고 계시더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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