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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Jun 29. 2021

어떤 청소

라 쿠카라차 메로나

어떤 청소     

지그재그 앞뒤로 움직이기를 두어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심통난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던 엔진이 소음을 멈췄다. 안도의 한숨, 백미러에 비친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한 시간을 운전해서 낯선 아파트 주차장까지 달려온 내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동 주차장에 도착했어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지금 회의 중이라 바로 답신을 못했네요. 저희 집은 **호에요. 비밀번호는 ****이고요.”     


예상치 못한 대답. 뭔가 의사소통이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집에 안 계시나요?” “네, 퇴근하실 때 문자 주시면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 잠시, 그녀의 문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어젯밤에 “청소 좀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지역 맘 카페에 올린 터였다. 집이 엉망인데, 모레 갑작스러운 시댁 식구들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서너 시간만 청소 도와주실 분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시시콜콜한 고민에도 이런저런 해답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는 곳인데, 유독 그 글에는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답했다. “도와드릴게요.”     



정말 청소를 도와주고 싶었다. 내겐 시간이 있고 이리저리 다양한 나라를 떠돌며 개발된 까탈스러운 정리의 노하우가 있었고. 무엇보다... 태어나 처음 살게 된 이 낯선 도시에서 말을 섞고 웃음을 나눌 친구가 필요했다.      

선명하게 적힌 “입금”이란 단어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일하기 편하되, 나이보다 너무 캐주얼하게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어쨌든 호감을 줄 수 있는 티셔츠’를 찾으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아침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도시로 이사 온 후 2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의 친구도 사귀지 못한 나의 첫 번째 오프라인 회동에 대한, 다소 어긋난 응답이었다. 핸들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에겐 청소가 시급하고, 나는 청소를 좋아하잖아?’     





모르는 사람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일은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내 피 어딘가에 범죄자의 DNA가 흐르고 있던 건지, 심장이 쿵쾅거려... 에잇 그냥 집에 가자...라는 생각이 자꾸만 속삭였지만 문은 스르르 자연스럽게 열렸다.     


집은 각오하고 예상했던 상태가 아니었다. 누군가, 서너 명의 악당 뛰어들어와서 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물건을 엎고 부수고 헝클어뜨린 후에 급하게 뛰쳐나간 것 같았다. 부서진 장난감 소방차의 뒷바퀴를 옆으로 살짝 밀어낸 후 소파 모서리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아뿔싸”



그때, 앉으면서 건드렸던 건지 발끝에 떨어져 있던 곰인형이 북을 치기 시작했다. 노래도 흘러나왔다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허둥대며 인형을 진정시켰지만, 인형은 5분, 10분에 한 번씩 졸던 로마 병정처럼 깨어나 진군가를 불렀다.




     

먼저 마룻바닥을 정리했다. 일단 떨어져 있던 각종 장난감과 인형, 동화책과 아기용품들을 아기의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수건과 빨래들도 세탁실에서 바구니를 가져와 담았다. 음식물이 묻어 찐득해진 카펫은 일단 대충 닦고 접어서 소파 옆으로 올렸다. 공간의 여유가 조금 생기자... 청소기와 걸레 등을 찾아서 닦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손대는 게 맞나 싶었지만, 아기의 것이 분명한... 당장 세탁이 필요한 작은 옷가지들과 양말, 속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부엌도 같은 순서였다. 일단 식탁을 가득 메운 물건들 중에 설거지거리를 싱크대로 옮기고, 그 밖의 물건들은 굴러다니는 작은 바구니들에 보이게 담았다. 그 틈틈이 어떤 물건을 어디에 넣어서 어디에 두었는지 메모도 겸했다.      



언제 닦았는지 모르는 찌든 냄비를 닦으며 아침에 서둘러 먹느라 미처 뚜껑도 닫지 못한 영양제 병들을 봤다. 나는 약병의 뚜껑을 하나하나 찾아서 닫고... 식탁 옆 장식장 첫 번째 칸에 약들을 모았다. 식탁 위에는 생활비로 쓰려고 했던 건지... 만 원짜리, 천 원짜리 서너 장과 동전이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식탁 위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한 곳 한 곳 청소를 해나갔다.

아침에 몸만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한 침대의 이불을 개고, 던져놓은 옷가지를 접어서 침대 참에 두고. 말라가는 요플레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남편의 컴퓨터 방에 환기를 하고, 쓰러져있던 골프채를 한 곳에 모으고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옷가지를 옷걸이에 걸었다. 빨래를 마친 아기의 귀여운 옷을 탈탈 털어 햇빛에 널 때, 널린 옷의 모양들이 너무 귀여워서, 이런 작은 기쁨을 누려도 되나, 미안해졌다. 몇 년 동안 아이가 생기기를 원했지만 나에겐 와주지 않던 축복의 실체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화장실에 변기에 찌든 때까지 솔로 박박 문질러 닦고 유리에 튀긴 물기를 싹 닦은 걸레를 세탁실 한편에 모아 두고야, 나는 그녀의 집 소파에 제대로 한 번 앉아볼 수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 세 사람이 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젖은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아기의 이유식 용기와 플라스틱 접시들은 하단 두 번째 서랍. 식탁 위에 있던 과자와 간식들, 김 등은 식탁 옆 렌지대 아래쪽 서랍... " 그 편지는 A4용지 한 장을 꽉 채웠고, 맨 끝에 작은 하트로 마무리되었다. 해괴한 연애편지였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갈 때, 아기의 방 안에서 북치는 곰돌이가 다시 노래를 불렀다.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차에 오르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었다. 나는 시동을 걸고, 문자로 “퇴근합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수고하셨어요. 입금 번호 알려주세요”라는 답이 왔다.      

괜찮다고 말할까? 그런 내 모습이 뭔가 몹시 재수 없었다. 

‘뭐 어때? 뭐가 걸려?’     




 

낯선 도시의 퇴근길도 막히면 똑같았다. 핸들을 양손으로 꽉 잡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전방을 주시한 채로, 그 퇴근의 붉은 물결 속에 서 있었다.      


딩동! 휴대폰을 펼쳐 보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의 문자일 것이다. 그 소리가 왠지 찌르르하게 명치를 찔렀다. 그녀의 가족사진을... 떠올렸다.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알 것 같았다. 고지혈증, 안구건조증이 있으며 가끔 변비로 고생한다. 그녀의 남편이 골프와 게임을 즐기고 고깔 모양 과자를 좋아한다. 아빠를 똑 닮은 그녀의 아들은 모든 장난감 자동차의 바퀴를... 뽑아버린다. 


그녀의 오늘 저녁이 어제보다 조금은 더 평화롭기를.  라 쿠카라차!           



*    *    *    *     



며칠 후, 주말 저녁에 남편과 다퉜다. 

그날이 무리였던지 며칠 몸살을 앓게 된 이유를 모험담처럼 펼쳐 놓았는데, 숟가락을 탁 내려놓고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도대체 당신은 나에 대한 존중은 없어?”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남편은 일일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처럼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노려봤다. 당장 돈을 돌려주라고 했다. 나는 지지 않고 맞섰다. “뭐가 그렇게 창피해?” 


그는 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챙긴 후,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다.     


이곳은... 보수적인 것으로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업도시였다. 일터의 후배나 동료들에게 ‘누구 처가 청소 일 다닌다더라’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입장이 난처해질 터. 대학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단 한 번의 이직 없이 경력을 쌓으며 승진을 경쟁하는 대한민국 보통 중년 남자의 노동 환경과 체면까지는... 갈무리하지 못했다.  



30분쯤 후에 남편이 돌아왔다. 

손에는 집 앞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산 비비빅과 돼지바, 메로나를 넣은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비닐봉지를 건네받으며 내가 말했다. “미안해.”      


남편이 비닐봉지 속의 메로나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소파에 앉으면서 되물었다. “... 뭐가?”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답했다. “... 내 존재가, 미안하다.”        


남편은 피식 웃더니 대화를 마무리했다. “... 뻥까시네.”


- 끝 -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 소금 시, 윤성학





https://www.youtube.com/watch?v=_t1irV73b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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