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문수 Jul 21. 2021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그녀의 손톱, 그녀의 운동화

녹음실 옆, 작가실이라고 이름은 붙었지만 실제로는 창고로 쓰는 두 평 남짓의 공간에 스위치를 켰다. 최소 일 년 전 저녁 라이브 방송 때 벽에 걸었을 것이 분명한 무명 트로트 가수의 플래카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접혀있었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방 안으로 따라왔다. 10센티가 훌쩍 넘는 얇은 구두 뒷굽은 유독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딱딱해서 듣는 사람의 뒤꿈치까지도 아리게 했다. 그렇게 도도하게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방문을 채 닫기도 전에 무너지듯 의자에 앉으며 울음을 쏟아냈다.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 언니 어쩌려고...'


방문을 잠갔다. 녹음실과 이어진 벽이라 소리가 새지는 않을 것이다. 울음은 십 분이 넘도록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눈 화장이 엉망으로 번져갔다.


    "저... 비닐.. 비닐봉지 하나만.. "


너무 울어서인지 호흡이 가빠지고 낯빛이 창백했다. 재빠르게 복도 끝 수면실까지 달려가서 개인 소지품을 챙겨두라며 항상 비치해두는 검은 비닐봉지 뭉치를 들고 다시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빼서 입에 대더니 호흡을 시작했다. 그렇게 또 오분이 지났을까, 안색이 돌아왔고 비닐봉지를 내려놓는 그녀의 엄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열개에 손톱에 박힌 크고 작은 큐빅들도 미세하게 떨렸다.




"작가님무슨 책 읽는지 궁금하네. 제가 반납할게요. 나... 따라와서 불편한 거 아니죠? "

불편했다. 당연히.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밝은 목소리로 내 오른팔에 넣었던 팔짱을 빼고 반납하려고 가방에서 꺼내던 다섯 권의 책을 자기 옆구리에 끼고 돌아섰다. 성동구립도서관 4층 문학 열람실의 텅 빈 소파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구두 소리는 졸고 있던 사서도 고개를 쳐들 만큼 크고 또박또박하게 파열음을 남겼다.


뒤돌아 섰는데도 눈이 뒤통수로 돌아갔다. <초보 수영 길라잡이>, <탈모비책>, <노안극복마사지103>. 딱, 이 세 권이 걸렸다. 900번대 독일 문학 서고에 서서 책들 사이로 너머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을 살폈다. 빌린 책의 정체를 펼쳐보면 좀 많이 창피한데. 방송에는 전혀 쓰지 않은 자질구레한 실용서들이 10년 차 프리랜서 방송 작가의 실력을 까발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제멋대로네'

찜찜한 기분을 괴테의 <초록뱀과 아름다운 백합> 위에 던져놓고 나도 돌아섰다.


이런저런 책들을 펼쳐서 목차를 살펴보고 던져 놓기를 반복하느라 한 시간 남짓이 훌쩍 지났다. 약간 골탕 먹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평소보다 더 느긋하게 열 권을 골라 돌아왔을 때, 붉은 원피스에 인조털 외투를 걸친 그녀가, 구립도서관 창가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모로 떨군 채 졸고 있었다.


도서관 옥상 마당으로는 천천히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밤에 내린 눈을 채 다 치우지도 않았는데 또 오면 내일 아침 방송은 온통 눈 얘기, 사고 얘기로 가득할 것이다. 그녀도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 한피디가 까칠하죠?... 오늘만 이해해요.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술 많이 마시나봐요. 그럴 나이잖아요?"


뒷얘기를 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프리랜서에겐 금기지만 오늘만큼은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피디가 잘못했다.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실수 몇 번 했다고 토크백까지 걸어서 방송 중인 진행자를 공개적으로 무안 주는 건 득 될 게 없었다. 목소리는 유독 마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기분이 상해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다. 당황하고 상한 마음으로 방송이 매끄러울 리도 없다.


"아냐. 잘못했지. 한피디 말이 맞아. 요즘 정신없어요. 나. 소송 막바지거든. 양육권 안 뺏기려고 치사한 거 다하고 있어. 시아버지가 돈 좀 있으셔 챙겨주실 거야. 손자한테는 끔찍하니까. 일 이제 그만두려고요. 나... "    


종이컵에 거의 남지 않은 커피를 억지로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속사정 고백이 당황스러웠다. 그녀와 함께 일을 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였는데 결혼 후 퇴사했다가 최근에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재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들었다. 나 역시 이쪽 방송국 사정에 능통하지는 않았지만 6개월이라면 어디 경력으로 써넣기에도 애매한 기간이었다. 어렵게 다시 시작한 일이고 그런 시점이라면 더욱더 필요한 게 돈벌이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참견을 입밖에 내기에 그녀의 시선 이미 아주 멀리에 있었다.


괜찮다는데도 굳이 차에 태워 집 앞에 내려주었다. 눈발이 점점 거세졌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긴 시간이 필요할 게 뻔했다. 그녀는 창문을 내리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길고 하얀 손. 그 끝에 달린 큐빅들이 눈물처럼 반짝거렸다.     




*     *     *     *



"이 번호 여전히 맞나요. 기억해요, 나?"

 

6년쯤 지난 봄날이었다. 이제 막 벚꽃이 지고 있었지만 바람은 어딘가 쌀쌀했다. 발신자가 해외로 찍힌 문자라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두 번째 문자가 왔다. 반가웠지만 조금 껄그럽기도 했다. 그녀는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송국을 떠났고 그 일로 담당 작가였던 나와 피디는 약간의 문책을 받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연락두절은 무책임했고 남몰래 속사정을 짐작할 뿐이었다. 나한테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섭섭했다. 그래서 오후 뒷 약속이 있던 날, 정말 잠깐... 점심시간에만 그녀를 만나는 것으로 약속 잡았다.


주말의 인사동은 예상대로 복잡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를 못 알아볼 만큼. 구두 대신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고, 원피스 대신 헐렁한 남자아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미녀였기 때문에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 드리운 작은 주근깨와 기미가 지난날의 이야기를 성급히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골목 안쪽의 작은 식당으로 갔다. 주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반찬이 먼저 턱턱 상에 올라오는 전형적인 관광지 한식당이었다. 미역줄기며, 콩나물 무침 같은 남은 반찬이 버리긴 아깝다고 집어 올리는 손에 더 이상 큐빅 같은 건 박혀있지 않았다.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았다. 이혼 소송이 끝나자마자 아무 대책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들어갔다고. 그래서 고생을 좀 많이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공립초등학교에서 임시 사서직 일을 얻었고, 몇 년 지나면 정규직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미소가 맑았다. 전에 없이 웃음이어서 이 사람이 이런 표정을 가졌구나 싶었다.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손사래를 치고 카운터로 달려간 그녀 뒤에서, 천천히 신발을 신으며 "언니, 운동화도 잘 어울려요"라고 말했다.


다음 약속시간에 늦지 말라며, 어서 가라고 등을 떠민 후...  벚꽃잎이 막 날리기 시작한 거리 속으로 뒤돌아갔다. 나는 버스에 올라 창가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크게 두 번 흔들었다.



*     *     *     *



그 후로도 몇 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문자를  몇 번 보내왔는데 제대로 답장을 못했다. 그런데 어제 카카오톡이 나에게 그녀 생일을 알려주었다. 프로필 사진에는 햇빛비치는 잔잔한 호수의 풍경이 담겨있었다.


 축하해요. 언니. 생일.

 



end.


  



 https://www.youtube.com/watch?v=mZz9uYdj_v4


매거진의 이전글 침묵이 알려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