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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문수 Jul 21. 2021

침묵이 알려준 것

원고료 삭감과 해고 중에 고르기

P작가의 해고 통보가 시발탄이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국장과의 단체 미팅. 그때마다 눈인사 나눈 정도의 친분이니 친구라고까지는 할 수없지만, 그런 눈인사도 일곱 번을 넘어가면 끈끈해진다. 여덟 번째 회의에서 듣게 된 난데없는 해고라니. 작가팀뿐만 아니라 동석했던 프리랜서 아나운서나 리포터들까지도 모두 놀란 눈치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니 표준 계약서도 쓰지 않을 때다. 프리랜서에게 업무 기간을 보장하라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고만 고만 피디와 작가들이 10년 이상 함께 일하다 보니 익숙해서 손발이 잘 맞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타 방송국에 비해 원고료가 짠 대신 의리 있고 편안한 분위기가 장점으로 꼽혔다.


게다가 P작가는 나름 개국공신으로 7년이나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아침 방송을 도맡으면서 한 번의 사고 없이 잘 이끌고 있었는데. 동 시간의 진행자나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오직 그녀 하나만 퇴출이다. 후임 작가를 구한 것도 아니어서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피디들도 누가 당장 프로그램 하나를 더 맡아줘야겠다는 얘기를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래. 딱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P작가가 작년에 작가들 중 처음으로 휴가를 썼다는 거다. 보름 정도 메인 원고를 뺀 다른 부분은 동료 작가들에게 나눠서 부탁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평범한 직장인들이라면 1년에 한 번 가는 휴가가 무슨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싶겠지만.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휴가를 잘 쓰지 못한다. 티브이 쪽 일은 그래도 한 프로그램에 적게는 두 팀에서 네 팀까지 팀을 나눠 일하다 보니, 자기 몫의 분량이 나가고 나면 일주일 정도 쉬기도 하는데 라디오는 사정이 달랐다.


"작가님들은 매일이 자유로운데 뭐 또 휴가를 따로 가요?"라는 무례한 응답이 서슴지 않게 나오곤 했다.

작가들끼리 잠깐 차를 마시면서 뒤풀이를 할 때면 '방송국 솔거 노비들'이라고 씁쓸한 자기 비하를 털어놓곤 했다. 작가들은 부친상을 당해도 상복을 입고 원고를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를 낳으러 갈 때도 다음날 오프닝 원고는 써놓고 낳아야 한다면서 웃었다.


P작가가 그 관행을 깬 것이다. "올해 휴가 좀 쓸게요. 엄마 칠순 여행 가려고 5년이나 적금 부었어요"


매일 생방송을 하는 라디오 특성상 날씨나 속보 뉴스 같은 정보를 신속하게 교체하려면, 작가들이 옆에 딱 붙어주는 게 좋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동료 작가들이 3일씩 기꺼이 일을 나눠 맡아 주기로 했다. 담당 피디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그 2주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작가들은 앞다퉈 돌아온 P작가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의 여행담은 듣는 둥 마는 둥 "진작에 이렇게 품앗이를 했어야 했다"는 탄식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신임 국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P작가의 해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P작가에게는 미리 알렸는지 아예 오늘 미팅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국장과 피디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도 작가들 중 누구 하나 자리를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작가들 중 연차가 제일 높은 K 작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거... 국장을 불러서 다시 한번 따져 물어봐야 될 일이죠?"


곧바로 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유는 알아야죠. 설마 작년 가을에 추석 끼고 잠깐 휴가 썼다고 그러는 건가요?" 모두의 침묵.


그때, 평소 작가 모임 관리를 담당하던 수더분한 인상의 S피디가 빼꼼히 문을 밀고 얼굴을 내밀며 입을 뗐다. "작가님들... 신임 국장님께서 점심 대접하신다는 데, 요 앞 중국집 <화원정>에 자리 마련해놨으니... 얘기 끝나시면 다들 오시죠. 금방 오세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문을 닫는 S피디의 능청이 낯설었다. 내가 입을 뗐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예요. 상황에 밥을 어떻게 먹어요. P작가와 통화부터 해보죠."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P작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씩씩했다.


"아... 네. 그렇게 되었어요. 글쎄,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뭐 프리랜서니까. 작가님들 생각하시는 그 이유 아니겠어요? 저도 좀 황당해서, 아니 무슨 해고를 전화로 하냐.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했더니. S피디가 그래도 오늘은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들도 좀 그랬겠죠."


전화를 끊자 또 한 번의 침묵이 이어졌다.

뒤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작가가 입을 열었다. "일단 밥은 먹으러 가죠. 기다린다니까. 가서 신임 국장 얘기도 들어보고요."




*      *      *      *



껄끄러운 식사자리였다. 신임 국장 옆에서 너스레를 떠는 S피디의 아재 개그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작가들은 불편한 기색을 내면서도 누구 하나  P작가의 이름을 내뱉지 않았다. 한마디라도 할 것 같았던 K 작가 조차 눈을 내리깔고 숟가락만 움직였다. 나 역 화가 났지만 연차로 보나 나이 로보나 입을 뗄 군번이 아니라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침묵은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가방을 던지고 K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K 작가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작가님. 제가 나이는 많지만 우리 방송국의 작가 대표는 아니잖아요. 정작 P작가도 아닌데 또 뭐라고 물어봐요. 그렇게 답답하셨으면 작가님이 직접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우리 프리랜서들이 다 사정이 다르잖아요. 저는 혼자 아이 둘을 키워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처지가 아니라고요."



*      *      *      *


P작가는 조용히 방송국에서 사라졌지만. 작가들의 수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봄 개편에는 원고료가 대폭 삭감되었다. 회사 차원에서 피디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피디 집필제를 확대하겠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기존의 금액을 받으려면 같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두 개는 맡아야 될 판이었다. 그 제안이 싫다면 나가라는 거였다.


이전과 같은 일을 하면서 반값의 원고료를 받으라는 게 쉽게 수용될 제안은 아니었다. 나는 담당 피디에게 이런 경우가 어딨냐고 따졌다. 피디 역시 회사의 방침이라 다른 방도가 없다고... 그래도 작가님은 연차가 좀 있어서 다른 작가들보다는 많이 받는 거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보탰다. 작가들의 모임인 "작가협회"쪽에 문의를 했지만 협회 해당 방송국은 협회 차원의 협의를 맺은 바 없어서 다른 방도가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우리가 이렇게 원고료를 낮춰버리면, 더 연차가 낮은 후배들은 대체 얼마를 받고 일하게 되는 걸까요? 선배들이 같이 보이콧을 해줘야... 이 문제가 풀려요."  나는 K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했지만 뾰족한 대답을 받지는 못했다.


결국 원고료를 수용하지 못한 내가 제일 먼저 봄 개편에서 빠지게 되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대부분의 작가들은 낮은 원고료를 수용하고 대신 원고의 분량을 줄이는 것으로 피디들과 암묵적인 협의를 했다고 한다.



*      *      *      *



이래저래 다 합치면 10년을 들락거린 곳의 인연이 그렇게 끝났다.

그해 막 여름이 시작될 때, P작가가 사는 안국동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여전히 밝았고 새 프로그램을 맡아 바쁘다고 했다. P작가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을 얘기하러 갔는데, 오히려 그녀가 나를 위로했다.


"... 상처 받은 건 오히려 작가님인 거 같은데요? 그날 아무도 얘기 못한 거. 저는 못 봤지만 예상은 했어요. 작가들이 그래. 잘 안 뭉쳐져요. 상처 받지 마."



*      *      *      *


그 후로도 또... 한 십 년쯤 지난 것 같다. 난 뭘 했을까. 아무것도. 종종 언론을 통해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뭉치는 방송 작가들>의 기사를 보게 되면 뿌듯하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침묵한 작가였고 뒤로 빼는 작가였다. 동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못 본 척했다. 그러니 내가 그런 대우를 받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런 시스템이 계속되는 건 안 좋다.  "작가들이 원래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작가들은 원래 안 뭉친다"는 걸 배우는 게, 작가 일을 잘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작가가 안 되는 게 낫다. 


시스템이 이상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나 그 바깥에 있는 사람이나 같이 다친다. 오래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한 사람이 된다. 방송은 좋아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청춘을 다 바친 곳에서 이런 식의 아픔을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배 작가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동료들을 미워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nd.  



... 결국에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닌 친구의 침묵이 될 것입니다 - 마르틴 루터 킹




https://www.youtube.com/watch?v=5iSlfF8TQ9k&list=RDGhjtRvanFas&inde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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