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고전 질문 독서
우리 운명의 본질적인 내면의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데미안
내면의 선을 이루는 체험들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내면의 선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면을 채우기 위해 굳이 선을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의 끝없는 조합으로 이루어진 면과 공간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러한 연속적인 체험들로 선의 형태가 결국은 내면을 면으로 채우고, 공간을 메우는 지경까지 간다?
그러한 선의 연속적인 체험들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냄새까지도 체험이라 본다 하면, 태어날 때부터 내면의 선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선을 만들 때, "결정권"에 대해 다룬다면, 이야기의 방향은 달라진다. 부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이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무엇을 말해볼 수 있을까?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영향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느덧 성인이라는 나이에 다가왔음에도 내면의 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본인의 몫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내면을 채우는 주된 사람이 나이여야 하는 이유는 내면의 선을 어떤 색으로, 어떤 순서로, 어느 위치부터 채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오는 갈등에 대해서 쉽게 무너질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내면의 선에 대한 자기 설계와 제작, 피드백까지 이루어진 후라고 할 수 있겠다.
충분히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채움에 대해서 그 날렵한 내면의 선을 촘촘히 세우는 시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