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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쓰 Feb 06. 2022

엄마 사람

그 무렵 처음 엄마가 된 나에게 생존의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심리 책과 틈만 나면 골똘히 들여다보던 습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아침에 나서서 저녁이면 돌아오는 학창 시절의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낌새는 커녕 우리 집에서 오갔던 대화도 지나치듯 보냈다. 흘러가는 대화야 본디 그 속성이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시시때때로 중요하게 배워야 할 생활의 모양마저도 학업을 핑계 삼아 스쳐 보냈다. 단 한 가지 자신 있는 것은 양말을 보기 좋게 접어 넣는 것, 볶음밥 만드는 정도였다. 그렇게 생활 과목이 생겨, 시험을 본다면 "노력 요함"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시험을 치른 과목 중에, "가정"이 있었지만, 이것 또한 애호박전에서 썰어야 할 애호박 두께는 0.5cm라고 외운 것이 전부다. 물론 지금도 애호박을 볶음밥 전용으로 볶기 위해 아주 세밀하게 정사각형으로 잘라내고 있기는 하다.

이런 나에게 엄마라는 사람이 되어서 해야 할 일은 감당해보지 않은 영역의 과제였다. 태어난 지 1개월도 안된 아기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할 일 목록"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울면, 그 신호에 맞추어 움직이는 시스템에 지금까지 시험에 최적화된 사람으로서, 엄마 되기는 "노력 요함"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가 우는 때에 나라는 사람은 갑자기 우주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지금까지 꼿꼿하게 옷을 차려입고,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친 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왜 그토록 멘붕과 무기력을 오가며, 신체는 살아있으나 정신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을까? 아이의 울음소리에 초단위로 반응하는 신체를 못 견뎌하면서도, 정신을 제자리로 붙들지 못해 안타까워했을까?


엄마가 된 사람은 엄마 사람에 관한 심리 책을 손에 쥐고, 생각하는 습관으로 언제 울릴지 모르는 아이의 울음 신호를 불도 켜진 않은 거실 한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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