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감이란 얼마든지 적대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치사한 일인가. 세상 바뀔 날이 얼마 안 남았을수록 매사를 튼튼하게 해 두기로 했다.
엄마는 수십 년도 전에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위 스쳐가는 여러 높낮이의 차보다도 제각각 모양과 스치는 속도를 가진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다섯 손자 손녀 할머니가 된 엄마의 이야기를 딸은 운전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듣고 있다.
시집와서 두해 만에 아이를 가졌고, 태어난 딸아이가 아버지를 닮아 그렇게 눈이 크더란다. 할머니의 큰 눈과 큰 아들의 큰 눈, 처음 태어난 손녀의 큰 눈까지 닮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랄까? 어쨌든 아름다워서 큰 손녀의 이름에 아름다울 미자가 떡 하니 놓였다. 바닥에 놓일 새도 없이, 아름다운 눈을 가진 아기는 큰 울음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를 가졌고, 그 비법은 고등학생이 되는 때까지 오래도록 써먹었다. 그렇게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이질적인 행복으로 할머니와 엄마 사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벗어놓은 한 짝의 신발이라도 발만 끼우면 금세 나가기 좋은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아두었다고 엄마는 기억했다. 그 기억은 둘째가 태어나기 딱 그 시간까지 였다고 한다. 세상이 바뀌는 날이 아마도 둘째가 딸로서 울음을 내비쳤던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세상을 딸 둘 가진 사람으로 살면서 드디어 매사를 살피게 되었다. 할머니가 둘째를 손자로 생각했다가, 한순간에 손녀, 딸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튼튼하게 묶여있던 할머니와 엄마의 행복한 시간의 끈은 그날로 끊어져 버렸다. 기대했던 이의 실망감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적대감으로 바뀔 수도 있고, 지금까지 친절을 받고 있던 엄마에게 홀대를 한 할머니의 매서움은 가장 크게 적대감으로 돌아선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슬쩍 할머니가 된 엄마를 쳐다보았다. 둘째 딸은 이질감이 적대감을 가장 큰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본, 엄마를 모시고 제법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고, 매사는 스스로 튼튼하게 두면서 기억을 놓아두는 것이란 걸 둘째 딸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