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휘저어 포대기를 벗어 버리고 밝은 세상 구경에 눈을 빛내는 아이의 건강한 볼보다 더 확실한 봄은 없었다. 그 확실한 봄에 남겨진 기억은 아직도 열 여명이 넘는 일가족의 마음에 여태껏 본 적 없는 놀랍고도 슬픈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
늦은 봄에 태어난 아이는 아이의 아빠, 할아버지까지 대대손손 계보를 얼굴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삼대를 인증하는 얼굴로 태어났다. 유난히 큰 머리는 집안 내력에 따라 자랑거리였고,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의 얼굴에 앙증맞게 자리한 눈코 입의 미세한 움쯜거림에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물며 아이가 중력을 거스르며 머리의 하중을 이겨내며 돌 가까운 때 보여준 걸음마는 놀라움의 나날로 그때까지는 행복의 디딤발이었다.
그날따라 서울에 사는 고모 가족들까지 모두 내려와 시골집 거실은 새삼스럽게 봐도 동글한 얼굴을 가진, 많이도 닮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옹기종이 모여 앉아 숟가락 떠먹는 소리며 젓가락 오가는 소리며 연신 먹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임을 서로의 귓가로 전해주고 있었는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두꺼운 천정 벽에 몇 개 얹은 놓은 두툼한 파란 기와지붕마저 들썩이는 비명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한창 걸음마를 하던 아이는 아무도 보지 않는 그때에 하필, 서너 발을 움직이다가 안방 어른 무릎만 한 윤칠이 반들반들 여간 빛나는 서랍장 모서리에 눈썹 위 이마를 내리 받은 것이었다. 원래도 툭 튀어나온 짱구이마로 큰 인물이 집안에 났다며 경사를 알리던 할머니의 음색은 세상에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울며 불며 길을 잃었다. 할머니의 손사래 못지않게 아이의 엄마는 순간 심장이 멎은 듯한 고요함으로 아이를 쳐다보았고, 튀어나온 이마보다 더 튀어나온 혹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아이의 눈동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눈을 보면서 아이를 달래려고 했으나, 빨개진 얼굴만큼 얼마나 울었던지 눈동자도 빨개져서 아이를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엄마 키만큼 커진 아이를 쳐다본다. 반달눈을 가진 아이는 엄마가 쳐다보기만 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묻지도 않고, 반달눈을 보인다. 이유가 없어도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 아이는 웃을 때마다 왼쪽 눈가 위에 반달 모양 상처도 함께 내보인다.
아이의 눈동자를 보며 꼭 안아주던 엄마도 그렇게 여러 번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