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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쓰 Feb 06. 2022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다는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고, 내가 한 말 중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듯하여 눈앞이 흐릿해졌다.


처음 엄마가 되는 날까지도 아기는 뱃속에 거꾸로 자리해 수술 외에는 별다른 도리를 생각해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정 엄마는 아이 셋을 낳고, 낳은 때때로 며칠 하고, 그 뒷날이 되면 벌떡 일어나 안팎의 일을 해냈다는 무용담은 제왕절개를 해낸 딸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헛헛함을 건넸다. 나 역시도 자연분만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터라, 비교식의 고통 무용담을 쉽게 꺼내놓지는 못했다.


수술을 끝내고, 일주일 입원인 입장이 되는 산모의 곁에는 자연분만을 세 번이나 겪은 친정 엄마가 아니라, 처음으로 아빠가 된 남편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고이 잠들어 있는 평화로운 아내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머리를 쥐어뜯기는 드라마 속 출산 장면의 남편과 자신은 꽤 다르다고 느꼈을까?


마취의 꿈길에서 현실의 문을 찾아 문고리를 여는 순간 고려시대 대장군이 지녔을 법한 장검으로 허리를 쉴 새 없이 가르는 촉감과 시큼함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아기를 맞이하면서 엄마의 시작을 느낀 것이 아니라, 칼날의 쓰라림 뒤를 뒤따르며 폭우로 굴러 떨어지는 협곡의 큰 돌덩이들의 할큄이 허리 언저리에서 요동칠 때, 엄마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언제 깨어날지 모를 아내의 곁에서 처음 아빠가 된 남편은 축하 전화에 꽤 들떠 있었다. 전화기 너머 후배의 어떤 물음에 남편은 당차게 대답했다.


"우리 와이프, 괜찮지!"


남편의 당찬 대답에 허리를 감싸고도는 장검과 큰 돌덩이들은 보란 듯이 나의 마음까지 후벼 팠고, 나는 지금의 상황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마른 목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제 크기를 찾지도 못해, 제법 크게 떠진 눈만 몇 번 꿈뻑이다 질끈 감아버렸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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