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운전을 했다. 속도 낼 때와 줄일 때를 구분했었다. 다만, 운전자 경력 중간쯤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겪은 사고만 아니었다면, 1차선을 마음 놓고 다니는 것은 여전했을 것이다. 지금은 비 오는 날의 운전과 계기판 110이 넘어서면, 달달 떨리는 무릎의 증세가 남아있다.
또 다른 날 비참함은 운전대에서 떨리듯 찾아들었다. 비보호 좌회전 차선에서 정말 착한 아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 차가 모두 다 가고 나서, 천천히 움직일 마음으로 그렇게 기다렸다. 모든 차가 시야에서 벗어나고, 천천히 왼쪽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알맞게 이동했다. 그 이동은 잠시였다. 뒤 따르는 차에서 빵빵 소리를 거칠게 내며, 내 차 옆에 차를 세웠다. 그 차가 선 곳은 차가 가야 할 도로 위였다. 1개 차선 도로에서 2대의 자동차가 같은 방향으로 선 것이다. 먼저 도착한 경적소리로 인해 직감적으로 불편함이 떠올랐고, 잠깐 고개를 돌린 틈에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덩치 큰 남자가 눈썹을 코 가운데로 모으고, 입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수침심과 분노가 반응했지만, 내 마음속 경계까지였다. 큰 덩치와 표정에 압도되어, 말문을 잃었다. 그 차와 내 차 사이는 마치 우주 공간에 떠있는 작은 두 행성 같았다. 공기의 부재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말했던가. 말은 90퍼센트 이상이 내용보다 형식에 따른다고. 말투. 표정, 목소리를 저 너머의 공기를 투과해 살펴보니,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의 언어가 아니었다. 비참함은 몰려왔다. 차에서 내릴 생각은 도무지 할 수 없었다.
정서 중심 심치치료에서 화를 내는 것도 본능적인 보호를 위함이 있다고 한다. 불합리한 것에 항거하는 본능적인 행동. 그렇게 화도 긍정적으로 역할을 한다. 내가 느낀 비참함은 화의 감정과 접속할 수 있는 지점은 있는가? 나는 왜 화를 내지 않았고, 우주 상태로 상황을 스쳤을까? 그것이 상황에 적응한 나의 마음이었다.
내가 겪은 일은 무엇이고, 해소되지 않는, 정말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