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방법은 '보인다'라는 언어 외에는 없지만, 확신만이 가득한 빈약함은 마주하고 있는 동안의 즐거움이다. 나는 너를 보았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 속에서 너는 얼음 요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였고, 어느 작가의 글 속에서는 거울 속에 들어가 열쇠를 쥐고 있는 데미안의 모습이었다. 여전히 맴돌고 있는 너, 경험을 피하며 울고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운전을 하다가도 괜스레 눈물이 흘렀다. 보이는 것은 빈약하다고는 하지만, 너를 보게 된 때부터 나는 질문을 수시로 하고 있다. 그건 너도 알터이다. 너는 어떤지? 너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양한 질문을 하고 있으니,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이제는 '보인다'로 재는 것은 알맞지 않다. 나는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두드린다' 언어로 재려고 하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질문으로 두드리고, 너를 확인하려고 두드리고, 함께 가자고 두드리고, 고통 또한 경험의 일부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며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두드린다'는 어설픔이 가득한 확신이 되어, 부족한 나와 너라도 괜찮다를 연신 말하며 사는 것이 참 즐겁다를 입 밖으로 나오게 해 주었다.
삶이 꽤 시끄러워지긴 했다. 두드리기 위해 고요를 택하고, 두드려서 고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