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속에 주인공 요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출장 가는 아버지가 선물을 사주신다고, 말하라고 했다. 어린 요조는 우물쭈물하다가 대답을 못하였다. 뭐가 갖고 싶지? 하고 물어도,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요조가 겨우 떠오른 "책"을 말하였을 때, 아버지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절 앞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들이 갖고 놀기 좋은 정월 사자춤 탈을 사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요조는 살그머니 일어나 아버지의 수첩에 "사자춤"이라고 써 두고 잤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신념에 빠진 요조를 본 것이다.
노르웨이 숲에서 만난 와타나베는 달랐다. 적어도 내가 느낀 부분에서는 그렇다.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광경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대체 이런 광경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와타나베는 혼란스러움을 비켜두고, 자신에게 중요한 느낌에 머문다. 자신이 선택한 시간 속에 스스로를 충분히 오랫동안 둔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스스로를 만난다. 편안해하는 자신을.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사는 삶. 생각하고 있는 삶 속에 머무르는 이 사람을 보며, 나는 나에게 질문한다.
"대체 이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로 사는 삶, 내가 되는 삶, 선택하는 삶, 주체성이 살아나는 삶.
어쩌면 내가 그토록 가고 싶은 곳은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유로운 삶인 것이다.
싱클레어, 요조, 와타나베.. 고전에서 만난 이들을 견주며 떠오른 느낌을 내 삶에 가져온다. 충분히 머무는 그 시간이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기쁨이고, 삶이다.
나는 그렇게 자유로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