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알고 있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

by 복쓰

1. 멈춘 지점은?

17쪽/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2. 왜 이 부분에서 멈췄을까?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나는 어떠한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와 유효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3. 이 부분에서 떠오른 질문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알고 있는가?

4. 이 질문은 내 삶에 어떤 유효성이 있을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바라는 것은 현재 결핍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결핍을 자각하고,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삶의 기능은 어떠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선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다움에 불편함이 다소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나다워지기 위해서 바라는 것을 알고, 실행해야만 하는 진실이 있는가? 적어도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정직하게 꺼내놓을 용기는 있는가?

바라는 것을 정직하게 꺼낼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실행을 해야 한다면, 나에 대해 추가되는 조건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수용은 어렵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조건에 부합되는 나여야만 하는 요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조차. 왜 나는 나다움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가? 마치 바라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말이 이 순간 떠오른다. 존재에 대한 묵직한 경험으로 이전보다 더욱 신중해진다. 나는 나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그에 대한 감각을 세밀하게 인식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고유한 존재에 대한 경험이다. 무조건적인 수용! 나다움은 그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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