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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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이전보다 더 깊이 생각에 잠겨, 그리고 더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으나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과 대답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어떤 상황인지 알아봅니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한 "단어"를 듣게 됩니다. 단순함에서 복잡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어가 귓가를 스칩니다. 소리가 지나갑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진실된 진단이 이루어졌습니다.
여전히 소리가 지나갑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되지 않고, 마음도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꽤 선명한 이유도 밝혀졌지요.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그런데 진단과 해결방법까지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고민이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할 때입니다. 진단과 결과 사이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문제에 대해 쉽게 대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얼마나 많은 지식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다시 멈춰봅니다. 진단과 결과 사이를, 효율적 개입의 측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효율적 개입'
효율적 개입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대답을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해결하고 싶은 그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말이죠. 효율적 개입의 실체는 투명한 나의 일치성입니다. 나의 경험인데요. 그 문제에 대해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그 선명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단어에 대한 경험은 글을 읽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서로 겪어내 보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겪어서 아는 앎이지요. 일치성과 투명성을 가진 앎은 실현 경향성이 꽤 높아져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개입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대답하기 위해 겪어봅니다. 겪어서 아는 앎을 찾아 나서는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 관계에 머물며, 천천히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며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