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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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하시냐고요, 형씨?'
갑자기 마르멜라도프가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어디든 갈 데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나의 질문과 대답
'더 이상 갈 데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경험의 해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갈 데가 있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데가 없나요?
지금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갈 곳을 찾아 헤매는 나의 우울한 심정은 시간이 더해갈수록 선명해지겠죠.
어떤 일이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어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해당되지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갈 데가 있다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 갈 데가 없다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는 불안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두렵습니다.
갈 곳이 있든, 없든 불안은 나를 감싸고, 나를 흔들어댑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이 있기는 할까요?
불안함이 선명해질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나이지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불안, 염려를 느끼는 것입니다.
불안을 선명하게 경험할수록, 나의 존재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경험할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요?
갈 곳이 있든, 없든
나는 지금 여기에 서있습니다.
두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울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몸서리치게 두려울 수 있겠다는 말입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갈 곳이 있냐고요? 갈 곳이 없냐고요?
나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존재하고 있고, 때때로 감정이 살아납니다.
좋은 감정을 경험하면 좋겠지만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나를 감정이 앞설리는 없을 테니까요.
두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전만큼 헤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은 가장 나를 믿게 된 확실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믿습니다.
나는 나의 경험에 집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