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을 한두 단계 뛰어넘게 해 준 것이 있나요?
월든
378쪽
가장 야성적인 동물이라 하더라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을 얻으려고 충분한 노력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겨울을 살아서 넘기는 것이다. 내 친구들 중 누군가는 내가 얼어 죽을 작정이라도 하고 숲에 들어온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동물은 그저 은폐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체온으로 따뜻하게 만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발견하였기에 넓은 방에 공기를 가두어두고 그 공기를 덥게 하여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 안에서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걸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어 한겨울에도 여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창문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빛을 들어오게 하고, 램프를 써서 낮의 길이를 늘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능을 한두 단계 뛰어넘어 예술을 위해 얼마간의 시간마저 마련하는 것이다.
나의 질문과 대답
인간의 본능을 한두 단계 뛰어넘게 해 준 것이 있나요?
화가 났습니다. 손해가 되거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 화는 더 커졌습니다. 마음도 상했습니다. 마음이 상해서 안타까운 것인지, 마음이 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간이 안타까운 것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했지요.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가 솟는 본능을 희끄무레한 안갯속에 던져버리기도 했고요.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와 둘러싼 일은 본능을 포함해서 엄마를 바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장에 본능을 해결하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어요.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부르게 해 주고, 칭얼대는 순간은 토닥이면서 재우면 되었으니까요.
아이 키는 커지고, 몸무게도 늘어나 엄마의 무릎 힘으로 버티며 안아주기도 힘듭니다. 엄마의 키는 그대로이고,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듯 먹게 되면서 몸무게가 늘어나기는 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이는 것만 신경 써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여겨졌어요.
아이의 칭얼거림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부터 아이의 칭얼거림 속에서 정확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화가 찾아오는 날도 생겼고요. 친구 생일 선물을 사주고 싶은데, "그 정도로 친한 건 아니잖아, 생일 파티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하며 엄마가 생일 선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기준을 제시했을 때,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설명이 못하면서, 무작정 화를 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속상함을 흔들리는 몸과 찡그러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었고요. 엄마 기준에서는 아이의 화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아이는 엄마와의 시간을 훌쩍임과 가느다란 눈초리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화가 커졌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능대로라면, 화를 없애야 했습니다. 혹은 안갯속에 넣어버리면서 빨리 모른 척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마음은 쉽게 켜지거나 꺼지는 불이 아니었습니다. 열고 닫는 창문처럼 정확하지도 않았고, 램프처럼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 채워진 화난 마음에 있어서는 말이죠.
하지만 본능대로 우리를 두지는 않았어요. 아이를 생각하는 엄마,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가 서로의 마음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사이에 사랑이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았어요. 왜 생일 파티에 초대하지 않은 친구의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 대화를 하면서 그 선물은 초대와 상관없이 우리 아이가 친구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이었고, 그것이 아이와 아이 친구 사이에 중요한 약속이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밤 10시, 늦게 까지 문을 연 문구점을 찾아 선물을 사러 갔어요. 바깥공기는 차가웠고, 자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본능을 넘어섰어요.
오늘의 경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경험 속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울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보기로 말이죠.
엄마도 엄마 기준에서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지 않기로 말했고요.
쉽지 않아요. 쉽지 않지만, 이 경험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경험이기에, 사랑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