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06쪽>
그의 삶의 흔적들이 마치 그를 둘러싸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넌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그저 예전처럼 살아갈 거야. 의혹,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만, 자신을 개선하려는 부질없는 시도, 타락, 지금껏 손에 넣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얻지 못할 행복에 대한 영원한 기대, 그런 것들과 함께 말이지.' 그러나 그것은 그의 물건들이 한 말이었다.
나의 삶의 흔적들은 무엇인가요?
손등 위의 자국과 글쓰기 자국
침묵과 알아차림
먹먹함과 만족스러움
어차피 와 그럼에도
숨김과 꺼내놓음
멈춤과 이어짐
글을 쓰면서 동시에 손등 위 글루건 화상 자국을 바라본다. 벌써 20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손등 위의 자국은 지금까지도 먹먹함으로 떠오른다. 뜨거움이 느껴진 그 순간 침묵으로 나를 대처하게 했다. 처음 써본 글루건에 화상을 입은 순간 하얀 액체에 녹아내리는 손등 피부의 쓰라림 보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더 크게 들었던 시절이었다. 뜨거움과 수치심을 숨겼고, 나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보살피는 것을 멈췄다. 어차피 손등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 여기며 부끄러움을 앞세웠던 날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를 열 번이고, 토닥여줄 일이기도 하다.
차분한 가을 공기를 가르며 손끝으로 노트북 자판을 누르는 순간은 알아차림의 연속된 기회이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써 내려가면서 글쓰기 자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낮 시간에 있었던 불편했던 일을 그때의 감정과 욕구로 따뜻한 해석과 인정의 도구로 사용하는 시간이 고맙다. 이 시간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무거움이 서서히 걷어지는 것에도 있다. 꺼내놓음은 가벼움을 말하기도 하고 내일의 내 시간으로 경쾌하게 흘러갈 것과 이어질 것에 확신을 준다.
손등 위의 자국과 글쓰기 자국
내 삶의 흔적들을 해석하기에 중요한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