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일정을 조금 촉박하게 알게 돼서 넘버 예습은 물론 시놉마저도 찾아보지 못하고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보게 되었는데, 예습 없이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가볍고 산뜻하고 따뜻한 코미디였다. 대혼돈파멸극인 <사의 찬미>에만 파묻혀 있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힐링극을 만나서 너무 좋았다. 리프레시되는 느낌이랄까. 배우들도 그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나에게 SNS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행복했던 순간들을 박제하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냈던 행복한 시간들, 좋아하는 공연을 보고 느꼈던 감상들, 내 눈에만 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던 장면들로 피드를 채우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드립 욕심을 채우기도 한다 ㅎ) 행복했던 순간을 곱씹는 것 만한 합법적 마약이 없다. 그 순간들을 모아놓고 한 번씩 돌아보면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SNS는 항상 양가의 감정을 들게 하기도 한다. 요즘 인생의 너무 많은 순간들이 SNS에 매몰되어 있다. 사람들은 SNS에 사진 올릴 스팟들을 찾아다니고, 너무나 많은 공간들이 '인스타용'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SNS가 생활을 잠식해가고, SNS에 사람들은 매몰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SNS 속 생활은 허상의 세계가 되어간다.
SNS 속 '나'가 그날의 나에서 되고 싶은 '나'로,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가 버리는 순간, 인스타그램 속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게 우리네 인생일 게다. 인스타에 남기고 싶을 만큼의 특별한 순간들로 매일을 꽉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나에게 박탈감을 주는 모순형용의 상황들이 생겨난다.
SNS의 파도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단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부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에. 허구와 진실이 미묘하게 섞인 인스타 속 '나의 세계'의 중독성. 그곳에서 현실 속 나의 보잘것없음을 위로받는 일은 참 빠르게 익숙해진다. 차미를 보며 미호가 그랬듯이.
이 극은 그렇게 '나' 때문에 나를 잃어가는 아이러니에 처한 이들에게 참으로 단순한 메시지를 던진다. 'Love Yourself!' 명료하고 흔해빠진 메시지다. 하지만 아무리 흔해빠진 메시지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그 무게감을 완전히 달라지게 한다. 제아무리 이름난 격언이라도 앵무새마냥 반복하는 것은 현생에 지쳐버린 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기에, 우리의 대변자 미호는 차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사소한 두려움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것이 고작 '카메라 셔터 누르기'라는 매우매우 사소한 행위라는 것이 관객에 대한 설득력을 더욱 높인다.
"SNS가 날 불행하게 한다면 SNS를 버리면 돼!" 따위의 무책임한 우기기식 진행이 아니라, <차미>는 날 깎아먹는 허구 속 '나'에게 화해의 악수를 건넨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려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인정한다. 인스타 속 '나'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동경과 선망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진짜 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케 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 앞에는 떠먹여주는 Love Yourself가 아닌 Myself를 향해 가는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