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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Sep 27. 2023

[책] 생의 이면

양귀자,  「모순」

세상에는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도,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도 존재할 수 없다. 모순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우리는 이 두 개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뚫어줄 창과 모든 걸 막아줄 방패를 찾아 헤매이는 것 같다.



여기 모순투성이인 한 세상의 단면을 담담히 떼어낸 이야기가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끝없는 아이러니에 부딪힌다.






1. 열등감과 부러움의 모순


  먼저, 일란성 쌍둥이인 어머니와 이모의 "하나지만 둘, 둘이지만 하나인 인생 궤적"이 그러하다. 똑같은 생김새, 똑같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어머니는 불행하고 가난하고, 이모는 부유하고 우아하다. 어머니는 이모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나 모두가 불행하다 입 모으는 어머니는 그 불행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척같이 살았다. 쌍둥이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모진 운명에 대한 모멸감은 오히려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한다. 문제에 부닥치면 책을 찾고, 불행을 과장하면서 극복하기 위한 활력을 얻었다.

오히려 모두가 부러워 하는 삶을 살아가던 이모는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받'은 채 활력을 잃었다. 결핍의 결핍을 겪은 것이다. 한 번쯤은 깨지고 부서져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그리 되지 않도록 막았고, 이모 자신에게도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평온이 정답이 돼 버린 성곽에 갇혀 무덤속 같은 지리멸렬함에 던져졌다. 이모는 엄마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이모는 그 부러움의 감정을 능히 다뤄내지 못했다.





2. 몽상과 현실의 모순


  주인공인 진진의 어장(?) 안에 든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가 그러하다. 김장우는 진진 같은 사람이다. 서로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부딪히고 깨져 죽어버려도 좋을 몽상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특별한 사랑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영규는 진진과 같지 않다. 그에게 진진이 ‘사람‘인지 그저 ’계획의 일부‘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나영규는 진지에게 결핍된 ’현실’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진은 그의 앞에서는 ‘솔직’할 수 있다. 김장우는 꿈을 꾸게 하고 나영규는 꿈에서 깨워준다.





3. 안진진의 모순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순을 보여주는 건 안진진이라는 주인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이름부터 모순이다. 부정의 의미의 ‘안’과 ‘참 진(眞)’ 자의 결합. ”평생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아갈 운명“ 같은 이름부터가 모순이다.


 인생에 온 생애를 다 걸고 말겠다는 절절한 고백으로 시작한 것과는 달리 자신의 선택을 주어진 대로 내맡긴다. 만우절날 장미를 들고 이모를 찾아간 것을 ‘우연’으로 처리한 것이나 두 남자 중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를 순전히 ‘누구에게 전화가 먼저 오느냐’에 맡기는 것이 그렇다.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에 대한 탐색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내맡기는 듯한 태도다.


사랑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도 어찌보면 모순되어 있다. 김장우와의 여행길에서 분명 진짜 ‘사랑’을 깨달았으나 그 직후 황폐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나영규와의 감정은 사랑과 ’유사‘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안진진은 그의 앞에서만 솔직해질 수 있다. 진짜 사랑 앞에서는 자신을 한없이 감추고, 반대로 유사한 감정 앞에서만 자신을 꺼내놓는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통해 부족한 제 삶의 부피를 키우고자 했지만, 정작 사랑의 온전함을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려 믿을 수 없게 돼 버린, 애달픈 모순이다.





4.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안진진이 내린 결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작가 노트 속에서 발견한, 이 책의 핵심을 꿰뚫는 문장이다.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서로의 이면으로 양립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삶의 또 다른 지평이 열린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의 이면이며, “살아봐야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사람은 결코 행복만 할 수는 없다.


  태어남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이상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고 모순은 인생의 본질이다. 생명이 탄생하는 건 가장 축복된 순간이지만 그것마저도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로 시작하는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이 모순의 틈바구니에서 생겨나는 모든 감정들을 양귀자는 「모순」이란 작품으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진술해낸다. 인간의 내면과 인생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모순의 벽에 부딪히고 깨진 마음을 치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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