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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Apr 11. 2024

깨지지 않는 거대 양당의 세계

두 정당은 몇 십 년 동안 이름을 바꿔 가며 산업화와 민주화의 적자임을 자랑해 왔다.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 박물관에 고이 모셔야 할 지난 시대의 유물이자 교과서 속 활자로 빛나야 할 업적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교과서와 교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루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유령이 아직까지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탓이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나는 많은 정당이 인권과 환경, 기후와 생태, 노동과 복지로 싸우면 좋겠다. 누가 더 소수자의 삶을 챙기는지, 누가 더 강력한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챙기는지로 다투면 좋겠다. 나에겐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이 문제가 중요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문제는 이 세상을 오직 두 패러다임으로 쪼개 다투는 거대 정당이다. 그 탓에 우리의 시야와 세계관은 늘 그 자리에 멈춰서 있다.


교육청 독서토론대회의 선정 도서를 고르는 회의에서 김지혜의 가족 각본을 소개할 참이었다. 내 발언 차례 직전 한 선생님이 이 회의에서 장애, 노동, 성소수자, 인권과 같은 소재의 책을 제외해야 하는지 묻는다. 혹시나 민원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정치적 논란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이유다. 이 책의 명징한 논리로 변화할 세계를 상상하며 기대로 부푼 마음이 작게 쪼그라들었다. 두 손으로 든 책을 책상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누군가의 세계에서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한낱 논란거리에 불과하다니. 내 고통과 너의 고통이 같을 수야 없다지만 이렇게나 나와 누군가의 거리가 아득하게 멀고도 멀 수 있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거리가 조용했다. 내 앞에 남은 세계가 이 어둠만큼이나 짙어 보였다.


그리고 어제 소수자의 인권, 기후와 생태, 노동과 복지를 울부짖던 한 정당도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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