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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Aug 09. 2021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는 이유

 가끔 교사인 내가 바라보는 바깥세상과 교실 속 세계가 너무 달라 고민할 때가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는 망미단길이 있다. 흔히 말하는 인스타 감성의 카페가 많은 거리로 유명하지만, 독특한 컨셉과 취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독립 서점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학자가 운영하는 서점, 페미니즘 강연회를 주최하는 서점, 심야 책방과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서점 등등. 직업이 직업인지라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처럼 책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가득하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왜 이렇게 글쓰기를 힘들어할까?

  최근엔 브런치를 시작했다. 삶을 녹여 단단한 글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다. 가입 절차가 엄격해서 글을 쓰고 싶은 이유와 함께 자신이 쓴 몇 편의 글을 보내 심사를 통과해야만 본격적으로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다. 이 플랫폼에서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자신의 글을 모아 책을 내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출간한 뒤 인기 도서가 되기도 하고, 독립 출판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한다. 읽고 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동체 속에서, 나도 모래사장 같은 평범한 일상 속, 빛나는 의미를 발견해 한 편의 글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그런데 왜, 우리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는 걸 이토록 힘들어하는 걸까?

  받아들이는 교육을 넘어 표현하는 교육으로 넘어간 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우리 교실에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는 학생들이 많다. 무엇인가를 써보라고 하면, 많은 학생이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학생들은 글감을 발견하는 방법을, 글감을 엮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방법을 배운 경험이 드물다. 빈 원고지에 글을 쓰라는 요구만을 받을 뿐이다. 학교에서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각종 백일장, 감상문 대회는 가르쳐주지 않고 재능만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행사들이다. 타고난 재능을 지닌 몇몇 학생은 수상이라는 영광을 차지하지만, 그렇지 못한 글은 교사의 서랍에 1년 동안 보관돼 있다가 버려진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누군가의 빛나는 인생 한 조각이 폐기 처분되는 순간이다.

  누구에게나 표현 욕구가 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이 표현의 이유이자, 표현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힘겨워한다. 그래서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어설프게 갈무리한다. 하지만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의 저자 홍승은의 말처럼 삶의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우리의 속은 썩기 마련이다. 그러다 날이 선 언어를 내뱉으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후회한다. 혼자 끙끙대며 힘들어하는 학생, 거친 언행으로 가족, 친구들과 다투는 학생은 사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 글쓰기가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 임을 알려줘야 한다.

  2021년, 학생들과 글로 서로의 삶을 보듬겠다는 거창한 다짐과 함께 글쓰기 동아리 '글적글적반'을 만들었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쓰고,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글을 읽은 뒤, 글을 중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지난 학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주로 내가 게을러서지만) 그렇게 많은 글을 쓰지 못했지만, 2학기에는 조금 더 힘을 내서 서로를 위로하는 글을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래는 온라인으로 합평을 진행할 때, 합평 유의사항을 알려주는 짤막한 동영상이다. 유튜브 제작용 영상인데, 참고로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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