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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적글적샘 Aug 10. 2021

교사의 마이너스 인생

몇 년간 변함없는 마이너스 통장을 바라보며

학창 시절엔 100원 단위로 가계부를 작성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땐 외출할 때마다 같은 옷을 입는 내가 부끄러웠다. 대학교 땐 한 달의 수입과 지출 예상 목록을 빼곡히 짜서 빈틈없는 생활을 꾸려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여유 없는 집안이었기에 모든 생활 비용은 오롯이 내 노동에서 나와야만 했다. 과외, 아르바이트, 멘토링 등등.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었다.

교사가 된 뒤에도 몇 년간은 부지런히 가계부를 썼다. 그리고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그러던 2014년 무더운 여름날, 보충 수업을 마치고 빈 교무실 책상에 앉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현실을 저당 잡히며 사는 내가 불쌍해 보였다. 빛나는 내 청춘의 세월이 가련해 보였다. ‘그래, 돈은 언젠가 모을 수 있을 거야. 화려하고 빛날 때, 쓰고 싶은 만큼 펑펑 쓰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이후 내 삶에 가계부란 없었다. 가끔 날아오는 신용카드 고지서로 한 달의 내 씀씀이를 가늠할 뿐이었다. 방콕 6번, 대만 3번, 일본 7-8번,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파리,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스페인 등등등. 남들이 가본 곳이라면 나도 질 수 없다며 여행 짐을 쌌다.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며, 그렇게 여행의 설렘과 기대로 힘든 일 년을 버텼다. 친구들과, 때로는 나 혼자 이곳저곳에 값비싼 추억을 새기기 바빴다.

저축한 돈은 어느새 동이 나버렸다. 결국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몇 천만 원을 이렇게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니. 어찌 됐든 공무원으로서 평생 돈을 벌 텐데, 이 정도 대출이야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마이너스 인생으로 6년을 살았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욜로의 삶을 뽐내며 후회 없이 놀고먹었다.

2020년, 코로나가 발생했다. 이제 여행은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늘 항공권을 검색하고, 여행 유튜버들의 지난 영상을 훔쳐봤다. 언젠가 다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여행 가고 싶다’를 외치고 다녔다. 보복 소비는 더 심해졌다. 마이너스 통장은 그대로였다.

어느 날, 방송을 보니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와 지금은 주식 투자의 시대라 외치는 것이 아닌가. 규제 중심의 정책 탓? 덕? 에 부동산 가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다. 주변에서는 수천 만원의 수익을, 수억의 자산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아파트 청약이 돼서 프리미엄만으로 몇 억을 벌었대’ ‘난 월 500을 주는 주식 리딩방에 들어가서 몇 천만 원의 수익을 냈어’ 마이너스 인생을 살면서도 누군가의 재력과 부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는데… 나 자신의 삶에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데 이 좌절과 절망감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리는 불로소득을 증오했던 나였다. 주식 시장처럼 정보의 비대칭이 극심한 금융 투자는 사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소비하는 즐거움에 빠져, 투자니 저축이니 하는 것들은 저 멀리 방 한구석에 내팽개쳤다. 그러다 결국 벼락 거지가 됐다. 난 대체 뭘 한 걸까.

며칠 전부터 몇 년 동안 들춰보지 않던 가계부를 꺼내 들게 되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본인 인증만으로 내 수입과 지출 내역이 한 번에 정리되는 어플을 사용 중이다. 내 수입과 지출 목록을 꼼꼼하게 정리하다 보니, 내가 참 무책임하게 살았구나 싶다. 다시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한 현실의 행복을 저당 잡힐 때가 왔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아는 법’이지 않은가. 충동과 무절제로 살았던 그 시절이 언젠가는 그리워질 테니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을 테니까. 박완서의 소설 속 대사를 생각한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라는 말을 되새긴다. 그 누구보다 내 청춘의 장면들이 빛났을 거라 나를 다독인다. 이 정도면 가난으로 얼룩진 내 어린 시절, 그 어두운 과거를 보상하기에 충분했다고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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